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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다]"한국라면 사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스위스 제네바대학 김정이씨

입력 | 2001-05-21 12:00:00


“여기 사람들은 날씨에 참 민감해요. 어떨 땐 대화의 절반이 날씨 얘기입니다. 올해는 거의 봄이 없었어요. 얼마전까지 흐리고 찬바람이 쌩쌩 몰아쳤습니다. 모두가 울상이었어요. 10일 무렵부터 날씨가 좋아져서 거리에 활기가 넘칩니다.”

자신도 며칠만 햇볕이 비치지 않으면 우울해진다는 김정이씨(35)는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다. 제네바는 레만호(湖) 옆에 자리잡은 국제도시. 바다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레만호 주위로는 만년설이 덮인 알프스가 펼쳐진다. 거주 인구는 절반 이상이 외국인. 제네바는 도둑이 없고 치안상태가 무척 안정돼 있다. 하지만 물가가 좀 비싼 게 흠.

김씨가 처음 스위스 땅을 밟은 것은 96년, 여행사 가이드 자격이었다. 그러다 2년째로 접어든 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의 한파는 여행업계에도 불어닥쳤고 그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불어 공부에 몰두했다. 1년반의 준비 끝에 김씨는 지난해 제네바 대학에 입학했다.

“스위스에선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쉬어 등 4개 언어가 공용어랍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공용어를 배우게 하기 때문에 2∼3개 언어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영어는 물론 잘 통하고요. 또 뉴스를 보면 정치얘기가 거의 안나와요. 대신 우리나라에서 각 지방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유럽의 인접국가 뉴스가 꼭 나오죠. 불어권인 제네바에선 프랑스 뉴스가 많이 나옵니다. 주말이면 독일이나 프랑스로 쇼핑가는 사람도 많죠.”

스위스 사람들에 대해 김씨는 검소와 여유가 특징이라고 말한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지 않고 모두가 중소형차를 탄다.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외국에서 온 관광객일 정도.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자기 스타일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단다.

“저는 여기서 5년이나 살았는데도 아직도 한국사람 티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 흔한 치즈를 못먹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탄산이 들어있는 물도 안마십니다. 얼마 전부턴 슈퍼마켓에서 한국 라면을 사먹을 수 있어 무척 좋아요.”

결혼을 했느냐고 던진 마지막 질문에 김씨는 “처음엔 못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안하는 것”이란 재치있는 대답으로 끝을 맺었다. “늙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데요…”라는 ‘양념’을 곁들여서.

afric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