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드라마가 범람하고 있다. 한 방송사의 역사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다른 방송사들도 앞다투어 역사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홍국영' '여인천하'에 최근에는 '명성황후'라는 드라마도 시작되었다. 중앙의 각 방송사들이 모두 1편씩의 역사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드라마는 가히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 여자 검객이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가 하면 여러 명의 남자를 단숨에 도륙내는 장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여인들간의 암투와 음모를 소재로 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흥미 위주로만 역사드라마를 전개하면 역사의 객관적 측면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드라마가 때때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료가 없는 부분이야 추측으로 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사료가 분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실히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허다하다.
많은 인기를 누리는 '태조 왕건'의 경우를 보자. 후백제의 장군이었던 '수달'이 왕건에게 사로잡힌 것은 육상이 아닌 해상이었다. 왕건이 간첩을 풀어 정보를 입수한 후 배에 타고 있던 수달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육상에서 사로잡힌 것으로 그리고 있다. 아지태가 모반을 꾀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사료에는 그가 같은 청주인이었던 입전·신방·관서 등의 인물을 모함했다고만 나와 있다. 반역을 꾀했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또 드라마에서는 능달이란 인물이 아지태 사건에 연루되어 철퇴를 맞아 죽는 것으로 그렸다.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능달은 왕건이 왕위에 즉위한 후 청주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파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살아남아 태조 19년(936) 후백제 신검과 왕건의 마지막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기본적인 사실을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역사를 단순히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고 해석하는 부분이다. 이는 사관의 역할과 임무를 과소평가한 견해다.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훈련받은 사관(史官)은 예전부터 역사를 함부로 조작하지 않았다. 물론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승자의 입장에 섰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실을 누락시켰을지는 모르지만 조작하지는 않았다. 현재 문제가 된 일본의 교과서도 대부분 역사에 대한 비전공자들이 만든 것이다. 현재의 역사드라마는 어떤 수단을 쓰던지 일단 승자가 되면 역사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역사드라마는 철저한 고증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김갑동(대전대 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