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대중의 기대를 배반한다.
방송 기자로서 오다가다 ‘TV 스타’를 지켜본 나의 결론이었다. 촉촉한 눈빛과 뭘 해도 요염함이 흘러 넘치는 ‘섹시한 그녀’를 막상 만나니, 늠름하고 씩씩하고 털털한 ‘중성적인 그’였다.
또한 TV에서 아주 권위적인 시어머니만 단골로 연기하는 ‘아줌마같은 그녀’를 만나니, 그 요요한 성적 매력에 여자인 나도 아찔해 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TV 속의 스타의 이미지를 믿지 않았다. 어쨌든 TV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적 매력을 죽이거나 왜곡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그러나 그것은 내가 뭘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 깨우침을 준 것은 바로 배용준이었다. 배용준은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모자랄 것 하나 없는 착한 대학생 역할로 데뷔했다. 정돈된 얼굴과 참신한 이미지로 순식간에 떴다.
나를 그를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다. 원래 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순한 이미지의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사무실 책상에 남편이나 아이 사진을 놓지 않는 이유와 같다. 집에 가면 매일 보는데 사무실 책상에까지 놓을 필요가 없듯이, 내 주변에 널린 ‘평범하고 착한’ 오빠나 아저씨와 똑같은 배우를 굳이 내가 눈여겨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배우라면 예측불허에 일탈적이며 엽기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때 선배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얘, 너 배용준 알지? 차암 매력적이더라.” 40을 넘긴 그 언니는 앤틱을 사랑하고 멋부리길 좋아하고 와인을 벗했다.
“아, 그 어린애? 어디가 그래?” 뚱하게 대답했다.
그 언니는 나를 약간 불쌍하다는 듯이 보며 그래도 한마디를 던졌다. “아직 니가 어려서 모르는구나. 배용준의 허리를 봐. 한번은 몸에 착붙은 옷을 입었는데 허리선이 다비드 조각같더라. 내가 본 남자 탤런트 중에 제일 섹시하더라.”
오호, 역시 도사는 다르구나 했다. 벗은 것도 아니고 티셔츠를 통해 허리선을 투사하는 초능력을 가진, 뭘 아는 여성의 안목에 선발된 배용준이었다. 일본의 여성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남자의 ‘허벅지’를 가장 매력적이라고 보았는데 그 언니는 한 수 위였다.
그간 남자의 우람한 근육질의 팔뚝에서 성적 매력을 느꼈던 무식한 나는 그 뒤 배용준의 허리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배용준이 나왔던 드라마를 눈여겨 보았다. 과연 허리선이 멋졌다. 오랜만에 얼굴을 내미는 에서 체중조절을 거친 군살하나 없는 그의 허리선을 유심히 관찰하며 미디어적 상상 속에 배용준을 듬뿍 즐긴다.
그러나 그뿐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몇 년전 드라마에서 16메가급 영어 대사도 훌륭히 소화했고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에서는 냉정과 열정이 교차하는 모호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발전을 보였다. 에서 차가운 시선은 그 어느 배우보다도 지적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배용준은 내게 또 하나의 배신이다. ‘잘생기고 성적매력이 넘치는 남자’는 결코 지적이지 않다는 나의 섣부른 결론을 여지없이 배신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전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