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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유병용/日외상 왜곡 시정책 즉각 제시를

입력 | 2001-05-03 18:44:00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넘어서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과 명분을 찾는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당시 여야의원들이 주일 한국대사관의 역사교과서 문제 대응 실태를 질타했던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우리 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적절히 대처해 오지 못했던 것 같다. 정부는 국익을 고려한 차분하고 신중한 대응 을 내세우고 있으나 국민의 불안과 분노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인 것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이 손상돼서는 안된다는 총리로서의 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국왕이나 총리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를 발표한 직후 자신들의 죄과를 호도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망언이 뒤따른 것을 보면 외교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한국 외교관의 대인다운 모습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도쿄(東京) 전철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 가족과의 일화 등을 소개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나카 외상은 당초 이 문제를 시급히 시정하겠다고 말하지는 않고 시간이 필요하다 고 주문했다. 이것은 세대의 문제 이고, 일본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도 마찬가지 라고도 말했다.

이어 다나카 외상은 최근 한일 우호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조기 해결하겠다 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아직도 그의 발언에 믿기지 않는 면이 있다. 다나카 외상은 역사교과서 문제 때문에 한일교류사업이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간을 끌지 않고 연착륙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그의 발언들은 한국 국민의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게 급하다는 판단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급히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외교적 수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 자민당은 당3역을 모두 정통보수를 지향하는 우익성향 인사로 채워 역대 어느 정권보다 복고적 국수주의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일본 내각이 대내외 정책을 국민적 인기만을 염두에 두고 펴나갈 때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며, 한국의 대일외교도 시련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일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국제적 균형감각을 갖춘 지도자이다. 다나카 외상이 진실로 인접 국가 국민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자 한다면 구체적인 방안을 즉시 제시해야 한다.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역사적 과오와 범죄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시정할 때 비로소 진실된 선린우호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병용(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한국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