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여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가 김대중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TV로 보고 내린 결론은 한국이 아직도 ‘법치(法治)의 나라’가 아닌 ‘인치(人治)의 나라’라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 어떻게 됐기에 법치가 아닌 인치의 나라라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됐을까.
김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엄밀히 따져 보면 거의 대부분이 3권 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소관 사항이 아니어서 관여하거나 개입할 대상이 못된다. 대통령이 이런 일들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권한을 한참 벗어나는 일종의 전횡이나 월권행위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김대통령은 “○○법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3권 분립 국가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있는데 어떻게 행정부 수반이 “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할 수 있는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가 아니라 ‘통과되도록 노력(또는 추진)하겠다’고 말했어야 옳다.
“모든 언론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조사하지 않는가”라고 한 발언을 보자. 언론사 세무조사의 주체는 국세청이고 조사 대상은 언론사인 만큼 양자간의 징세권과 납세의무의 관계다. 왜 대통령이 나서서 “우린 ‘그런 식’으로 한다”거나 “우린 ‘이런 식’으로 한다”며 세정 업무에 관여하는가. 이것은 월권 행위가 아닌가.
“언론사 기능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없도록 세무 당국에 ‘철저히’ 전(傳)하겠다”고 한 발언은 어떤가. 세무조사로 인해 언론인들이 위축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일이지, 세정 당국이 아랑곳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세무 당국에 ‘철저히’ 전하겠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말씀’이 법보다 우선하는 나라라는 외국 언론의 평을 수없이 들어오고 있는 터에 말이다.
김대통령은 “의약분업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이다”라는 발언도 했다. 어떤 법(률)도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질 수도 있고,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멘털리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공공요금 올리지 않겠다”는 발언을 보자. 공공요금의 산정과 책정은 해당 기관이 연구, 검토해서 경제 원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 타당성이나 불가피성은 무시한 채 “안올리겠다”고 장담하니 경제 논리를 정치 논리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우중씨 사법처리 ‘적당히’ 하지 않을 것이다”는 발언에서는 사법부 소관인 사법처리를 소추권이나 징벌권을 가진 판검사도 아닌 대통령이 무슨 자격과 권한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입법부는 ‘거수기’, 사법부는 ‘심부름꾼’이던 권위주의 시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인가.
세무조사 결과의 공개 여부와 관련해 김대통령은 “법을 ‘안 지키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어법을 사용했다. 국법 준수를 서약한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 법을 지킬 수도, 안 지킬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대통령이 국민의 법의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언사처럼 느껴졌다.
장동만(재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