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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문화]1980년대 리얼리즘 전시회

입력 | 2001-02-28 20:16:00


며칠 전 서울대에서는 故 박종철씨의 명예졸업장 수여식이 있었다. 세상에 없는 아들의 흉상에 학사모를 걸어주고 돌아서는 아버지 박정기씨의 모습에서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 뒷모습은 민주화운동으로 대변되는 80년대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회한과 그시절의 치열함이 이른바 386세대라는 모호한 정리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한 시민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말해 주는 듯했다.

그 80년대를 리얼리즘이라는 도구로 화폭에 남아냈던 작품들을 돌아보는 전시회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날이 잔뜩 흐린 28일 오후 전시실을 직접 찾아보았다.

임옥상, 신학철, 박불똥, 홍성담 등 80년대 민중미술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작가들의 작품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우선 눈에 띄었다.

안보선의 ‘걱정의 시간’은 극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마치 인체를 해부하듯 그려낸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회화적 표현이라고 해도 될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쥐고 한곳을 응시하는 사람을 그리고 있지만 그 후경에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은 웬만한 문학작품을 능가할 만하다. 작가 안보선은 미술학도로서 인체 해부학을 전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종구의 ‘부부’는 고흐의 '구두'에서 강렬한 붓터치를 섬세한 묘사로 바꿔놓은 작품 같았다. 고무신의 상호가 드러날 정도로 세부적인 묘사를 했지만, 이 두 켤레의 신발에서 농부의 삶을 살았을 부부의 고단한 생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80년대의 리얼리즘이 형식적으로도 방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꼴라주 등의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현실을 바라본 작가들의 작품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권순철의 ‘얼굴’은 강렬한 색과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억압된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붉은 계통의 색과 거친 붓터치가 인상적이다. 제목은 '얼굴'이지만, 인간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억눌리고 익명화된 개인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

오치균, 전수천 등의 작품에서도 이런 강렬한 색과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남성 화가들의 작품이 직선적인 사회현실을 문제시하고 있는 반면 여성화가들은 보다 내면화된 여성의 상황을 현실에 대비시키고 있었다. 특히 여성의 육체를 화폭에 드러냄으로써 몸·정신의 고통을 이중적으로 고발한 김원숙, 송매희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남성 화가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80년대 화단의 한 특징처럼 보였다.

전통적이고 소박한 색에 명료한 의식세계를 표현한 작품들도 한 축을 이뤘다. 단청색을 연상시키는 박생광의 '토암산 해돋이', 한지에 수묵담채로 주변인들을 그린 김호석의 작품 등이 그런 계열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회는 가나아트센터에서 4월 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80년대 리얼리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록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를 할인가에 구입할 수 있다.(문의전화:02-3217-0233)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