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시작된 한글 도메인 등록이 이미 10만 여 개를 넘어섰다. 한글.com, 대한민국.com 등 주요 한글 도메인이 아무대책없이 선점 당했다.
등록이 개시되자마자 주요 도메인을 선점키 위해 업체들은 거의 등록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다. 하지만 주요 키워드 도메인은 이미 등록이 불가능한 상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다국어 도메인은 일단 ‘한글’이라는 단어를 베리사인사에서 제공한 암호화 코드인 ‘bq--’로 시작하는 값으로 변환해 등록되는 방식이다. 이런 맹점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한글 도메인을 선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글.com’ 도메인을 등록하고자 할 때 변환 툴을 이용해 ‘한글’의 변환된 코드인 ‘bq?3dkvzlqa’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런 변환된 코드값으로 한글 도메인 등록 개시 이전에 bq?3dkvzlqa.com이라는 영문 도메인으로 미리 등록을 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10일부터 개시된 한글 도메인 등록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런 주요 도메인을 잡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선점된 도메인의 권리가 선점한 이들에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다국어 도메인이 실제로 사용가능 해지려면 ICANN에서 이에 관한 표준안을 확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당하게 선점된 도메인과 차이를 두기 위해 현재 ‘bq--’로 시작되는 인코딩 값을 바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z--’로 바꾼 다면 ‘bq--’로 시작하는 영문 도메인은 아무 쓸모 없는 영문 도메인으로 남게 된다. 아니면 사전에 등록된 한글 도메인을 일괄 삭제하는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한글 도메인을 선점하기 위한 또 한 번의 도메인 전쟁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도메인이 대부분 주요 기업명과 키워드이기 때문에 문제는 간단치 않다. ICANN에서 기업명이나 실수요자를 명백히 가릴 수 있는 도메인의 경우 당사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원칙을 정할수 있지만 이 경우도 보통명사의 경우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ICANN 인증 레지스트라인 ㈜가비아(www.name7.com)의 김홍국 대표는 “도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조건 선점하고 보자는 과열 경쟁에 의해 빚어진 일”이라며 “각자 필요에 의한 도메인을 등록하는 성숙된 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도메인이 한글 도메인 등록 개시 전에 선점 당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글을 일단 인코딩된 값으로 변환해야 하는데 현재 베리사인사의 홈페이지(www.verisign-grs.com)에 있는 다국어 도메인 메뉴에서 변환할 수 있다.
그 검색 창에 ‘한글’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치면 ‘bq--’가 붙은 형태로 변환된 값이 나타나고 이를 복사, 도메인 검색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도메인이 등록 불가능하다고 나오면 해당 도메인의 상세 정보를 확인, 도메인이 생성된 날이 10일 이전이라면 부당한 방법으로 선점 당했다고 볼수 있다.
▲네티즌과 업계의 반응
이번 사태를 겪은 네티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의없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원래 베리사인측의 한글.com 등록일이 11월1일이었으나 RACE방식의 변환이 문제의 소지가 있어 10일로 연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대로 RACE방식을 고집해 혼란을 일으킨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국내 도메인 대행업체들이 등록일 이전에 편법으로 한글.com 도메인을 예약 접수하고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만약 베리사인이 문제가 있는 RACE방식을 버리고 ASCII방식을 채택한다 해도 기존 가입자에 대한 환불문제와 업체의 신뢰도 문제로 결국 손해보는 곳은 국내업체들 뿐"이라며 국내 등록 대행업체들의 무대책을 질타하기도 했다.
몇몇 네티즌들은 베리사인과 국내 대행업체와의 부정내부거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단지 테스트용으로 사용된 RACE변환방식이 정식으로 채택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베리사인측이 거액의 돈을 받고 국내 등록대행업체들의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고 흥분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한 각계의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즉각 10일 이전 등록된 모든 한글.com 도메인에 대한 등록무효 집단서명운동과 상응하는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부 등록대행업체들은 이 같은 네티즌들의 편에 서서 이번 사태에 대한 베리사인측의 해명서를 요구하고 도메인관련 언론 사회단체 네티즌들의 협조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 대행업체인 D사의 대표는 "부당한 선등록 취소를 위해 네티즌들에게 자신이 신청한 도메인을 코드 변환한 후 데이터를 게시판에 보관하도록 하여 후에 증거로 이용하겠다"고 말하며 자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13일 오후에는 국내 대행업체 K사,A사,D사 등이 모여 공동대책을 강구하고 국내 레지스트라인 넷피아측에 항의했다.
넷피아 이창호팀장은 국내업체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베리사인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14일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측은 베리사인의 해명이 내일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10일 이전에 선등록된 도메인의 삭제를 요구하는등 대책을 강구중이다.
그러나 등록업체나 네티즌들의 공식적 대응책은 베리사인측의 공식해명이 도착할 내일쯤이나 한글도메인 정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주 후반쯤이 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베리사인이란 어떤 곳인가 - 허와실
베리사인은 미국내 도메인 등록 업무를 수행하는 레지스트리이다. 한국에서 베리사인과 같은 업무를 하는 곳은 krnic이다. 통상 '등록기구'로 번역되는 레지스트리 밑에는 전 세계 122개의 SR(Shared Registra, 이하 레지스트라)이 있다. 이들 레지스트라들은 최상위 도메인 관리 기관인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 의 인증을 받아 도메인 등록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통 '등록기구'로 번역된다.
베리사인이 도메인 등록 업무를 하게 된 것은 올 6월 Network Solution Inc.(NSI)를 합병하면서 부터다. NSI는 '91년부터 .com .net .org 등의 도메인 등록을 맡아왔다. 따라서 현재 미국내 도메인 등록이 가능한 레지스트리는 베리사인 한 곳 뿐이다.
베리사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위와 같은 '구조적 독점' 문제다. 미국내 유일한 레지스트리인 베리사인의 결정에 한국의 넷피아등을 포함한 세계 122개 레지스트라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베리사인의 한 마디에 많은 레지스트라들이 울고 웃게 된다.
이러한 독점 구조가 이루어 진 것은 인터넷이 미국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이 미국 중심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도메인 등록 역시 미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com, org, net 등의 도메인 등록 건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베리사인은 그러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 도메인 수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한글.com 등록으로 불거진 베리사인의 가장 큰 문제는 '준비부족'. 베리사인은 당초 영문 도메인 등록을 맡아 왔다.
베리사인이 이번 한글 도메인 등록 소동을 수습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한국내 레지스트라인 넷피아닷컴은 한국내 상황에 대해 베리사인에 항의를 하는 중이다.
베리사인측은 넷피아닷컴의 항의에 대해 "일부 한국 업체의 도메인 등록은 악의적인 도메인 선점 (스쿼팅 squating)이 될 수 있다" 며 "등록 유예 기간 동안 분쟁을 조정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10일 등록 시작 이후 12월 중순까지 유예기간 (Sunrise Period)을 두고 약 한달 동안 이의제기를 받아 도메인 선점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레지스트라인 넷피아닷컴의 홍선경 대리는 "결국 베리사인측이 분쟁해결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 이라며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다국어.com' 도메인 등록을 없었던 일로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다" 고 말했다. 넷피아닷컴측은 또 "베리사인측은 악의적인 다국어 도메인 선점이 확인될 경우 등록된 다국어 도메인을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고 전했다.
베리사인이 추진한 '다국어.com'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한국내 도메인 관리기구인 krnic은 계층적 자국어 도메인인 '자국어.k
r' 작업을 진행 중이다. krnic은 이미 지난 8일 한글인터넷센터 등 국내 4개 업체를 한글도메인 등록대행업체로 선정했다.
krnic에서 추진하는 한글도메인 방식은 '자국어.kr' 혹은 '자국어.회사.kr'이다.
이런 방식의 한글 도메인은 인지도면에서 베리사인이 추진하는 '자국어.com'보다 못하다.
따라서 krnic은 베리사인에 '자국어.com' 등록 접수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베리사인에서 거부하고 독자적인 '자국어.com' 등록을 한 것이다.
▲한글도메인, 어디가 선점됐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대기업과 정치인 들의 한글도메인이 선점됐다고 알려지면서 어떤 도메인이 선점됐는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유명인, 기업의 한글도메인을 선점한 것으로 알려진 등록자는 탑매니아, H사 ,G사, 김형호씨 등 4~5곳이다.
'탑매니아'가 선점한 도메인 중에는 이회창, 정몽준 등의 정치거물들도 포함돼 있다. 언론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각 언론사의 한글도메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의 경우 엘지텔레콤, 한글과컴퓨터 등이 선점됐고 특정 단어로는 통일 등이 미리 등록됐다. 김형호가 선점한 것으로 알려진 한글도메인은 '주식', '서태지' 등 유명연예인의 이름 등을 미리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탑메니아로부터 선점당한 한글과컴퓨터의 도메인 담당자 안윤희씨는“넷피아에 이미 한글만 입력하면 되는 키워드 방식으로 도메인이 등록돼 있다. 이번 한글도메인 등록은 '자국어.com'같은 개체 방식으로 다른 회사가 이미‘한컴’,‘한글과컴퓨터’를 등록했다고 들었다”며 “이번 한글도메인 선점에 대해서는 사실 걱정하지 않는다. 선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도메인을 팔아라 말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이번 한글 도메인 방식인 개체 방식은 한글도메인을 친 다음 닷컴(.com)을 치기 위해 영어로 키 전환을 해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네티즌들의 호응이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 등록 경쟁만 치열하지 많은 사용자들은 키워드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신일섭,양희웅,박종우,이병희 sis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