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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연의 스타이야기]영원한 아웃사이더, 조니 뎁

입력 | 2000-09-19 11:21:00


그는 스스로를 "미스터 악취(Mr. Stench)라고 불렀다. 세상의 내부로 파고들 틈 없이, 원주를 그리듯 세상의 바깥으로만 돌고 있는 조니 뎁은 악취까진 아니더라도 고약한 아웃사이더의 냄새를 충분히 풍긴다.

그가 세상을 밀어내는 것인지 세상이 그를 밀어내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불량기가 몸에 밴 그는 사고뭉치처럼 떠돌아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기묘한 스타. 99년 런던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파파라치를 때려 눕혔을 때도, 94년 뉴욕 아파트의 기물을 때려 부셔 긴급 체포됐을 때도, 사람들은 "조니 뎁이니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티꺼움'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스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모두 거부하고 정상적인 역할이라면 손사래치며 한사코 마다하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온갖 잡지들이 공언하는 '아름다운 남자'다. 95년 영화 전문 월간지 지는 조니 뎁을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남자 100인' 안에 끼워주었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100명의 무비스타', '섹시한 영화배우 50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그런데도 그는 "15세 이후 세상이 나를 내동댕이쳤다"고 느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집을 정신적인 안식처로 느껴본 적이 없으며, 학교는 지루하다는 핑계로 일찌감치 때려치웠다. 요즘도 그는 자신의 사춘기가 "모호한 터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스스로를 유폐시켰고, 그 방안에 기타 하나만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기타. 그것만이 조니 뎁의 지친 삶을 위로해준 유일한 친구였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회 부적응자였던 조니 뎁에게 실낱처럼 작은 희망이었던 기타리스트의 꿈은 쉽게 이루어졌다. "존 덴버의 음악에 취해 있던" 청춘기를 'The Kids', 'P' 등 15개의 밴드를 전전하며 모두 소진했고, 그걸로 곧 바스러질지 모를 상처 난 영혼을 달랬다.

니콜러스 케이지와의 특별한 만남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도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3류 밴드에 머물렀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량기 많은 사회 부적응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금세 알아봤다. 먼지 날리는 지하터널이 잘 어울리는 니콜러스 케이지는 자신의 에이전트에 조니 뎁을 소개했고, 곧 (84)의 글렌 랜츠 역이 그에게 주어졌다.

(86)의 하찮은 통역병 역을 거쳐 (90)에 캐스팅 되었을 땐 이 조무래기 배우의 삶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할리우드 아이돌 스타로 "인스턴트처럼 해치워질 뻔한" 조니 뎁은 존 워터스라는 '악취미' 감독을 만나 구제됐다. 눈물 한 방울로 소녀들을 기절시키는 10대 불량배 그룹의 리더 '크라이 베이비'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동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조디 뎁과 밀접한 캐릭터다. 그러나 이건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팀 버튼 감독의 (90)에서 세상과 격리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가위손 사나이로 부활한 조니 뎁은 정신박약아 동생에게 휘둘리는 '착한' 길버트 그레이프를 지나 (93)의 엉뚱한 소년 준, (94)의 B급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세상 '밖에' 서 있는 비틀린 사내로 남았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엔 언제나 강인함 대신 뜨거운 연민이 스며있다. (94)나 (94)처럼 거대 프로젝트의 구애를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블록버스터 히어로에 매번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대신 할리우드에서 악동 취급받는 감독들의 영화나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처럼 한 수 배울 수 있는 거장 배우들의 영화에 '싼 보수'로 출연해왔다. 최소한 그는 '돈의 노예'는 아니었던 셈이다.

미국 문화 월간지 지는 이런 그를 가리켜 "스타가 된 후에도 여전히 골목길에 오줌을 내갈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디 뎁 또한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내 안엔 어둠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늘 떠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어둠의 정체는 어쩌면 '바이퍼 룸' 앞에서 삶의 온기를 빼앗긴 리버 피닉스의 죽음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버가 약물중독이라는 오명으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눕혔을 때,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셔낼 뻔한 조니 뎁은 또 다시 짙은 어두움 안에 갇혀버렸다. 한마디로 그건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바이퍼 룸'은 조니 뎁이 경영하던 라이브 클럽이었고, 오랫동안 그는 친구의 죽음에 큰 빚을 진 듯 괴로워했다. 실제로 리버의 죽음은 조니 뎁과 무관한 약물중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됐건 그는 이 사건 이후 더욱 어두워졌으나, 할리우드는 다른 배우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조니 뎁만의 이 독특한 아우라를 사랑했다. 그는 지나칠 만큼 불손했으나 일에 대한 열정 만큼은 과도하게 넘치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부터 (99)까지 무려 3편의 영화를 함께 한 팀 버튼 감독은 그를 "진흙탕 속에서 끌려 다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라고 말했다.

진흙탕에서 뒹굴길 자처하는 그는 9월23일 개봉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