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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동네 궂은일 44년 남은건 빚과 병든 몸

입력 | 2000-09-07 00:19:00


“이건 해도 너무합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면 몰라도 동네주민들을 위해 44년을 하루같이 봉사해온 결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과 병마와 싸우는 신세라니….”

53년부터 97년까지 44년간 부산 영도구 봉래산 중턱 달동네인 신선1동에서 통 반장을 맡아온 ‘동네머슴’ 유민남(兪敏南·62)씨. 이 동네에서 ‘인간 상록수’로 더욱 알려진 그가 수년간 정부와 부산시, 영도구 등으로부터 당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6·25때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피란와 이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유씨는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에 반장직을 맡으면서 동네일에 발벗고 나섰다. 움막과 토담집으로 겨우 바닷바람만 막고 살던 이 동네에 사비 3200원을 털어 문패달기부터 시작했다.

그후 71년에는 전기가 들어오도록 시설을 마쳤고 79년에는 간이상수도를 설치했다. 당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간이상수도 사업은 그가 사채 4000여만원을 들여 3년간의 노력 끝에 월 2000t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 고지대 250여 가구에 물고통을 들어줬던 것. 유씨는 그간의 봉사를 인정받아 98년 부산시로부터 ‘자랑스런 부산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시설비 지원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다 83년부터 지금까지 제기한 10여차례의 탄원도 ‘핑퐁식’으로 정부↔부산시↔영도구로 오가며 묵살됐다. 부산시장과의 면담요청도 중간에서 차단됐다.

결국 유씨에게 남은 것은 이자와 운영비 등을 포함해 불어난 수억원의 빚덩이. 현재는 대지 70평의 무허가 주택마저 법원으로부터 압류통지를 받은 상태다.

유씨는 “공익사업을 하다 진 부채만이라도 해결됐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관에서 힘없는 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는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