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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인수 삼성車 부산공장 표정]"악몽 끝…맥발 펄펄"

입력 | 2000-07-24 18:25:00


르노―삼성자동차 법인 설립 등기를 한지 꼭 일주일째인 21일 아침, 부산 신호대교를 건너 삼성자동차 공장까지 이어진 편도 3차로 도로는 한적했다. 95년 삼성차 터를 닦을 당시부터 삼성차 부산공장에서 근무해온 김승환(金昇煥·37)과장은 승용차 안에서 지난 5년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어든다.

89년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한 김과장은 삼성그룹이 ‘21세기 신수종(新樹種) 사업’으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키로 하면서 자동차 근무를 자원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해 원래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그룹 차원에서 앞으로 자동차 사업을 전폭적으로 밀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

95년 초 처음 내려온 부산. 공장이 들어설 50만평 부지는 온통 갈대밭이었다.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해 파이프를 박아 지하의 물기를 뽑아내는 작업부터 서둘렀다. 엔지니어링에서 플랜트 건설을 맡았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김과장은 하루하루 몸은 힘들었지만 희망이 가득한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착공 3년만인 98년 4월1일 SM5 1호 차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공장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해 12월7일 아침 신문을 읽던 김과장은 깜짝 놀랐다.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사업 맞교환)이 추진된다는 보도였다.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설마 빅딜이 발표될 줄이야. 그 날만 해도 김과장은 ‘친지들에게 차를 한 대라도 더 파는 게 회사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1주일 휴가를 내고 차를 팔러 서울로 올라와 있던 참이었다.

급히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공장에선 난리가 나 있었다. 다음날 동료들과 함께 단체로 다시 상경, 태평로 삼성본관 건물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항의했지만 그룹에선 묵묵부답이었다.

김과장은 이후 몇 달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평생 안 피던 담배를 손에 잡았다. 부산공장은 가동이 중단됐고 2주에 한번씩 공장에 나와 출근 도장만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수많은 동료가 명예퇴직을 신청하거나 원래 계열사로 복귀하는 등 미래가 불투명해진 삼성차를 떠났다. 3000여명에 이르던 공장 인력이 1500명 선으로 줄었다.

지난해 3월 삼성과 대우 양 그룹 회장이 삼성차 인수에 대해 기본합의를 하면서 부산공장에는 대우 측 ‘주둔군’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가 흔들리고 빅딜 협상이 원점을 맴돌면서 삼성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올해 1월부터 제3의 인수업체를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고 4월27일 프랑스 르노의 인수가 확정됐다.

오랜 방황의 끝. 르노의 삼성차 인수 3개월을 앞둔 부산공장엔 요즘 모처럼 활기가 감돈다. 삼성차 직원들은 물론 부산 시민들도 르노를 두 손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본 닛산을 인수한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해야 SM5를 계속 생산할 수 있고 100여개 부품업체도, 부산 경제도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멈췄던 공장은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해 초까지 불과 월 몇 백대이던 판매량은 인수업체가 확정되면서 지난달에는 2500대까지 늘었다. 남아있는 인력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워낙 일손이 달려 주문이 몇 달씩 밀려 있다. 애프터서비스 걱정에 SM5를 외면하던 소비자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남아있는 삼성차 직원가운데 얼마 전처럼 명예퇴직을 할까, 계열사로 돌아갈까를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오히려 르노의 삼성차 인수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외국어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하느냐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부산〓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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