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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으로]김종광의 '경찰서여, 안녕'

입력 | 2000-07-14 18:34:00


‘괴도 루팡을 뛰어넘는 위대한 천재 도둑’. 김종광 소설집 ‘경찰서여,안녕’의 표제작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 강수가 장차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강수의 맹랑한 꿈은 한편으로는 아직 물정을 모르는 소년다운 순진성을 나타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이나 도덕이 한낱 허울에 불과한 현실에 대한 도저한 절망을 표현한다.

일찍이 몸에 익힌 도벽 때문에 가족과 학교로부터 버려진 강수가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경찰서에서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음에도 다시 달아난다는 이야기는 이니시에이션 플롯의 단호한 거부에 해당한다.

그것이 시사하는 진정한 삶의 가능성은 현존하는 사회 질서 속으로의 성공적인 편입이 아니라 그 질서의 위반에 있다.

위대한 도둑이 되기를 꿈꾸는 강수의 행동은 비록 희극적 분위기에 감싸여 있긴 해도 들끓는 위반의 열정을 그 중심에 가지고 있다.

‘경찰서여,안녕’에 드러난 위반의 욕망은 김종광과 같은 세대의 소설에서는 일반화된 테마이다.

그러나 김종광 소설에서 그것은 작중 인물의 심리적 자질일 뿐만 아니라 서사 담론 자체의 특징이다. 예컨대 서사에 봉사하는 수준을 넘어 질탕하게 펼쳐지곤 하는 요설, 충청도 서민의 입담을 생생히 살려내려는 언어상의 지방주의,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다수의 인물을 배치하는 연극적 설정 등은 그의 담론이 근대적인 소설 문법에서 크게 어긋나 있음을 증거한다.

특히 ‘많이많이 축하드려유’같은 작품에서 성공을 거둔 ‘중구난방(衆口難防)’의 형식은 한 개인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통일된 패턴이나 플롯을 만들어내는 정통화된 관행과 유쾌하게 결별한다. 그의 담론은 사람들의 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살아 있는 말의 모방을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김종광 소설이 종래의 모든 관행을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충청도 사투리의 능란한 구사를 통해 펼치는 능청과 익살은 그의 소설이 이문구의 계보 속에 있음을 알려준다. 소외된 변두리의 서민들이 변화하는 세태에 휘말린 와중에 연출하는 소극(笑劇)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세태 변화 자체의 천박성과 흉악함을 날카롭게 인식한다는 면에서 보면 그는 확실히 이문구의 늠름한 후생이다.

이문구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언어가 도시와 농촌의 접경 어딘가에 위치한 서민문화에 보다 가까우며, 그 속악하고 혼란스런 풍속에 보다 충실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의 말은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 속에 있는 말이며, 변두리 서민들의 짜증, 울화, 원한과 한몸이 되어 있는 말이다.

김종광 소설에 담긴 말의 퍼포먼스는 그것이 비록 희극적 재치가 풍부하다 하더라도 속편하게 즐기기는 어렵다.

그 어지러운 형식, 울끈불끈하는 강세, 노골적인 지방주의는 소외된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과 뒤틀린 관심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 중구난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심각한 적대성(敵對性)의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욕심을 내자면, 그 사람들의 적대적인 관계는 언어상으로 연출되기보다는 인간 행동의 구체적인 움직임이라는 형태로 제시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 변두리에 대한 김종광의 열정적인 관심은 ‘훌륭한 신세계’의 공상이 판치는 지금의 정황에서는 존중할 만한 것이다. 소설의 창조적인 가능성은 그 변두리의 세계를 주밀하게 탐사하는 작업을 통해 열리게 마련이다.

소설이란 원래 소외된 인간군상의 생태에 본적을 두고 있는 장르가 아니던가.

황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