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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필상/'낙하산 인사'는 개혁의 적

입력 | 2000-05-30 20:30:00


낙천 낙선자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잔치가 열리고 있다. 한자리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여권은 연일 북새통이다. 이는 집권당이 선거 공로자나 탈락자들에 대한 배려로 정부고위직이나 공공기관의 임원자리를 피해보상용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이 낙선자 피난처인가?▼

이미 선거 전부터 한국토지공사 사장, 언론재단 이사장, 방송광고공사 사장 등이 낙천자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로 지목되었다. 아직 국회가 개원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주미 대사, 한국관광공사 사장, 보훈복지공단 이사장,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등이 낙선자와 당료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더욱이 남북정상회담 후 당정개편을 앞두고 개각을 포함한 고위정무직, 공기업과 정부산하단체 임원에 대해 대규모 위로성 낙하산 인사가 추가될 전망이다.

IMF관리체제 이후 처음 치러진 4·13총선에 국민이 걸었던 기대는 참으로 컸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원 구성을 둘러싸고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여야를 보며, 또 정치의 새 지평을 열겠다던 386세대의 도덕적 타락을 보며 국민은 실망이 크다.

경제도 아직 살아난 것이 아니다. 부실채권과 외채에 눌려 나타나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붕괴가 계속 진행 중이다. 현대그룹의 위기가 바로 대표적 증거다. 더욱이 외국자본과 부유층이 벌이는 투기와 소비잔치가 경제를 거품으로 들뜨게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경제와 사회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을 정치적 희생물로 만들어 하이에나 잔치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1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에 공공부문 개혁을 4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추진했다. 과거 정부에서의 정부, 공기업, 산하기관들은 정경유착 부정부패 비효율의 온상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졌던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은 IMF위기 이후 경제회생을 위한 절대적 요건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이 지난 지금 공공부문의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요란했던 규제 혁파는 관료주의 기득권을 유지한 채 형식적인 숫자 줄이기가 고작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금융기관과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관치경제는 거꾸로 강화되었다. 여기에 시장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할 경제부처와 산하기관에 정책의 실패자 내지 정경유착 비리 관련 관료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구조하에 공공개혁은 자취를 감추고 낙천 낙선인사들의 피난처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개혁정책은 힘의 논리에 의한 편파적 개혁이었다. 온 국민의 생계기반을 불안하게 만든 IMF위기의 주요 원인 제공자들은 정경유착을 주도한 비리정치인, 부패관료, 그리고 부도덕한 재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IMF위기의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다. 개혁의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국민만 구조조정을 강요당하고 100조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떠맡으며 위기극복의 책임을 지고 있다.

▼정치권 자기혁신 노력 아쉬워▼

이에 따른 사회적 고통은 심각하다. 기업의 도산과 정리해고로 인한 실업자 증가와 임금하락은 근로자들에게 피해를 집중시켰다. 반면 긴축과 팽창의 냉탕온탕식 정부정책은 고금리와 주가폭등을 교차시키면서 고소득층의 수입을 IMF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시켰다. 피해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좌절과 상실감은 결국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다시 싸움판으로 변하고 공기업과 산하단체의 자리가 정치적 전리품으로 전락한다면 개혁은 정말 물 건너간다. 그리고 주요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은 외국자본의 희생물로 변하고 경제의 국제경쟁력 회복은 물거품이 된다. 이때 사회는 극도의 불만과 갈등으로 공동운명체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IMF위기로 피와 눈물을 흘렸던 국민에게 다시금 좌절을 안겨서는 안된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자리 나눠먹기 싸움을 벌이면 결국 모두가 침몰한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자신들이 먼저 개혁하는 참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