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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석동빈/악취나는 '말바꾸기'

입력 | 2000-05-29 19:45:00


10대 여대생을 성추행한 전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장원(張元)씨의 말바꾸기는 그가 그토록 내쫓으려 했던 ‘정치꾼들’의 행태를 닮아 있었다.

장씨를 조사한 부산 동부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자신을 변명하기에 급급한 다른 형사범과 다르지 않았다. 한때 장씨를 존경했는데…. 분노보다 서글픔이 앞선다”고 말했다.

장씨는 27일 오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1차 조사를 받을 때 “오모양(18·K대 사회학과1년)에게 팔베개를 해준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이상은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 오양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고 진술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술 탓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경찰의 2차 조사때부터는 조금씩 태도가 바뀌었다. “팔베개 외에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28일 오전 오양과의 대질조사에서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성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28일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서는 “오양이 어린 학생이어서 남녀관계가 어떤 것인지, 성추행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엉뚱한 말까지 내뱉기도 했다. 이어 29일 부산지법의 영장실질심사 때는 변호인을 통해 “오양과 합의를 진행중이니 영장발부 결정을 조금만 미뤄 달라”고 판사에게 통사정했다.

부패정치인들을 여론에 고발하던 그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물론 장씨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권이 있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때묻은 정치인들보다는 도덕적 우위에 있는 것으로 비쳐졌던 한 시민운동가의 허구가 드러나는 순간은 참담했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초라한 모습에서 한 경찰관의 얘기처럼 서글픔을 느낀다.

석동빈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