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달래기 선심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밝힌 중산층과 서민층 보호육성 의지를 뒷받침할 후속조치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정부의 정책방향이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와 복지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느낌이다.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주요대책들이 하나같이 그렇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서민층과 소외계층 지원대책이다. 내년부터 장기간 근속하다가 퇴직한 실직자들은 최장 1년까지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사업장이 근로자 1인 이상 전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지금까지 54만명의 거택보호자에게만 지급되던 생계급여도 140만명의 자활보호자에게까지 확대 지급된다. 그뿐만 아니다. 내년부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교생 40만명의 학비가 전액 면제되고 대학생 등록금 저리융자대상이 30만명으로 늘어난다. 농어민의 연대보증빚 7조원도 정부가 대신 보증을 서준다.
어디 그뿐인가. 정부의 선심정책은 끝간데가 없어 보인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금경감혜택에서부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창업지원, 농업경영자금에 대한 금리 인하, 각종 연금기금과 지역의보에의 재정보전, 공무원의 처우개선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한마디로 저소득층의 생계문제와 국민의 기초생활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발상이다. 이를 굳이 나무랄 이유는 없다. 사회안전망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는 현재의 공적 부조제도를 어떤 방법으로든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다. 그러잖아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재정적자도 날로 커지는 등 나라살림살이가 급격히 부실해졌다. 국가빚은 97년말 63조원에서 작년말엔 143조원으로 늘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작년 18조원에서 올해는 23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기업개혁과 금융구조조정 마무리 및 실업대책 재원 등으로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을 더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정부가 이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선심정책을 남발한다면 재정수지의 균형달성은 요원해진다. 국가채무나 재정적자가 아직은 염려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가채무를 소홀히 하다가는 빚이 빚을 부르고 결국은 또다른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경제에는 공짜라는 것이 없다. 나라살림에 더 이상 주름살을 주지않고 국민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생각이 있다면 정부는 먼저 오늘의 경제현실을 바로 보고 경제운용의 기본원칙과 국가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