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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걸스탠더드]性-나이 차별기업 「소송벼락」맞는다

입력 | 1999-06-10 19:40:00


올 4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상급법원 배심원들은 현대반도체 현지법인이 인력채용 대행업체에 여성 및 인종 차별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배상금 950만달러(약 114억원)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현대반도체는 96년 미 오리건주 유진시에 컴퓨터 칩 생산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엔지니어 등 전문가들을 채용하기 위해 테크니컬 리소스사와 인력채용 대행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 소유주 제프 에이브러햄은 “현대반도체 현지법인 인사담당 이사가 여성과 흑인의 이력서는 아예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며 소송을 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요구를 거부하자 현대가 업무관계를 끊은 뒤 2명의 신규채용 수수료 지급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현대반도체 현지법인은 “채용이나 계약실행 과정에서 결코 차별대우가 없었고 현재도 없다”며 억울해 한다. 이 회사 김민철(金敏哲)부장은 “현지법인 구성원 중 여성인력이 22%, 유색인종(여성포함)이 30%나 되는 등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반도체는 이달 중 나올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항소할 예정이다.

어쨌든 이번 소송은 해외 자회사를 둔 한국기업들에 성차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사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인종 피부색 종교 장애여부는 물론 남녀와 나이차이로 인한 어떠한 차별도 금지한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이를 쉽게 생각했다가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현지 고용관련법에 대해 철저한 검토와 ‘차별’로 인한 법률적 분쟁을 막기 위한 각별한 주의를 하지 않고 ‘한국식으로’ 적당히 일을 처리했다가는 기업이 풍비박산날 수도 있다.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미국법인은 3월 흑인 근로자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근무형태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일리노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당했다. 이 사건은 척추질병을 가진 흑인 근로자에게 중노동을 요하는 업무를 부여하거나 상급관리자들이 인종차별적 낙서, 별명부르기, 농담 등을 통해 인종차별적인 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도 수 차례에 걸친 근로자들의 진정에 대해 이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아니한 과실이 문제되어 같이 제소당했다.

성차별도 민감한 사안이다. 1월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 지방법원은 하트포드대 화학과 교수였던 레슬리 크레인에게 대학당국은 126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배상금액은 부당해고와 관련된 소송액으론 최고액수. 크레인은 93년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성차별로 인한 해고라고 주장해 소송을 냈다. 배상금 중 임금손실액은 67만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성차별 보상(200만달러) 정서적 고통보상(400만달러) 형사보상금(600만달러) 등이다.

한국에서도 공정한 고용기회의 보장과 준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헌법에도 남녀평등이 명시돼 있고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기본법이 만들어졌으며 7월부터 혁신적인 남녀차별금지 및구제에관한법도 시행된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박우건(朴宇建) 차별개선조정관은 “새 법은 차별 규제를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국가 및 공공단체까지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법제도상으로는 많은 성취가 있었으나 현실은 ‘평등사회’와 다소 거리가 있는 편. 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최명숙(崔明淑)사무국장은 “관행처럼 그냥 넘어갔던 기업들의 성차별 사례가 많았지만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법정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농협의 성차별적인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여직원 2명이 5월 농협을 상대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혐의로 형사소송을 낸데 이어 이달 3일 해고무효확인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민우회는 이 소송의 사회적 영향력과 중요성을 감안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직장에서 나이가 많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국내에서는 ‘나이차별’이란 말 자체가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나이차별 금지조항을 위반하면 소송이 제기된다. 67년 제정된 미국의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40세 이상 직원에 대해 고령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고용을 거부할 수 없으며 나이를 이유로 월급 및 고용조건 등에서 차별해서는 안된다.

미국에서 나이차별 문제는 성차별 다음으로 빈도가 높다. 2차대전 후 출생한 베이비붐세대의 고령화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젊은 피 수혈론’같은 말도 미국같으면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96년 미국의 동전 판매회사 컨솔리데이티드 코인스 세일즈사의 매니저 제임스 오코너(당시 56세)는 사주가 “회사 경영에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자신을 해고하고 후임에 40세의 매니저를 고용한 것은 위법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신규 채용자가 비록 40세가 넘었어도 전임자와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나이차별 금지조항에 저촉된다며 재심하라고 판결했다.

92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계열회사가 연령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32명의 직원에게 총 3500만달러의 천문학적 합의금을 지불한 사건은 나이차별 관련소송 중 사상 최고의 합의금 기록을 남겼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취업을 위해 제출하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일 수 없다. 용모가 뒤지는 사람은 뒤지는대로 예쁜 여성은 예쁜 여성대로 불이익한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다. 몇년 전 한국의 한 회사가 재미교포 2세를 대상으로 필요한 인력을 뽑기 위해 뉴욕타임스지에 광고를 게재하려다가 거절당한 일도 있다. 광고문안 중 ‘대한민국 국민인 자’와 ‘28세 미만인 자’가 인종 차별적이고 연령차별적이어서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기업’들의 광고만을 게재한다는 사시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지구촌시대에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 성 나이 인종 종교 등에 상관없이 기회균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소송이 제기되면 돈도 돈이지만 기업의 이미지에 엄청난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의 고용 관리도 선진화된 사회의 규제와 추세에 걸맞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고미석기자〉mskoh119@donga.com

★전문가 한마디★

미국에서는 각종 차별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고용관계에서도 인종 성 종교 연령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에 대해 연방민권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등 각종 연방 및 주 법령에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미국 등 해외에 진출해 현지인을 고용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현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기본적으로 직원의 채용 승진 해고 보수 고용조건에서 인종 종교 성 연령 및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

차등을 두기 위해서는 그 필요성에 대해 고도의 합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국내 기업과 기업인들의 행위가 문화와 관습의 차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차별로 인정될 가능성이 많다.

한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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