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비정이 나흘째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과 대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어서 여러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9일에는 양측 경비정이 서로 부딪치는 ‘몸싸움’단계까지 갔다. 무기사용을 자제하고 있지만 돌발적 충돌로 사태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북측이 어획량을 늘리려고 무리한 어로작업을 보호하는 것이거나 NLL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의도, 또는 관할해역을 넓히려는 협상용 행동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실질적으로 관할해 온 영해를 북한 경비정의 무력시위에 무방비상태로 두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 국방임무에 소홀하면서 식량이나 대규모 비료 지원만 추진한다면 햇볕정책은 다시 거센 비판에 부닥칠 것이다. 관할해역에 대한 북한의 주장이 무엇이건 우리가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월선(越線)은 침범이며 도발이 된다는 사실을 정부당국은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
북한 경비정의 침범과 막무가내식 버티기가 우리의 국방의지를 시험해 보는 작전이라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북측이 침범행동을 해도 햇볕정책을 펴는 정부아래서 국군이 무력대응을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햇볕정책이 북측에 그런 오판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햇볕정책의 3대 원칙은 흡수통일 배제 및 화해 교류협력과 함께 ‘무력도발 불용’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관할해역에 이견이 있다면 경비정부터 보내 침범할 것이 아니라 당국간 회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협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NLL은 53년 휴전협상 직후 유엔사가 육지의 휴전선을 해상으로 연장하면서 북측의 3해리 관할해역을 인정해주고 그 남방 해역을 우리의 배타적 관할권 아래 두기 위해 설정한 경계선이다. 그후 국제법의 일반추세가 영해 범위를 12해리로 확대하자 북한은 본래 3해리 기준의 NLL을 9해리 남방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동안 정부가 여기에 완충구역을 설정한 것도 그런 영해개념의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92년 남북한 총리회담에서 결실을 본 남북기본합의서에 실질적 관할구역을 인정하기로 명시할 당시에도 북한은 관할권에 대해 이의를 말한 일이 없다.
10일 오후 열린 국가안보회의는 북한 경비정 침범과 남북차관급회담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정부는 남북회담에서 북측의 도발행동을 먼저 따지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합당한 순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