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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리뷰]「TV문학관」 부활…기대엔 못미쳐

입력 | 1999-05-31 19:29:00


아직도 방송가에는 70, 80년대 KBS ‘TV문학관’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시청자들은 이 시간을 통해 문학과 영상의 행복한 만남을 즐길 수 있었다. 요즘처럼 ‘오만’하지 않았던 영상을 통해 ‘삼포가는 길’‘을화’ 등 우리 문단의 대표작들이 묵직하면서도 토속적인 화면으로 재탄생했었다. 이 프로는 96년 ‘신TV문학관’으로 부활한 뒤 제작비 문제로 ‘죽었다’ 5월 개편에서 다시 살아나 30일 첫회로 오정희원작의 ‘새’(2TV 밤10·10)를 방영했다.

이 드라마는 남매의 고단한 삶과 죽어서야 이룰 수 있는 꿈을 그렸다. 아버지의 매에 못이겨 도망간 엄마와 바람처럼 떠도는 아버지를 둔 우미(장수혜 분) 우일(류종원) 남매. 남매는 외할머니가 죽자 새 여자(방은희)를 맞은 아버지(정동환)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부산의 산동네 집에서 새삶을 시작한다. 레즈비언 부부(연운경 김보미)와 아내를 살해하고 도피중인 정씨(양형호), 오지랖 넓은 트럭운전사 정씨(정종준) 등 이 집의 좁은 단칸방만큼이나 사연많고 누추한 삶들이 남매의 눈을 통해 겹쳐진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건과 인물들의 ‘백화점식’ 나열로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어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빠질 수 있는 여유를 얻지 못한다. 성우의 내레이션과 우미의 대사를 통한 이중적인 이야기 전개도 드라마의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또하나 눈여겨볼 것은 컴퓨터그래픽(CG). 제작진은 우일이 죽은 뒤 새가 되어 날아가고 우미가 정씨 등에게 쫓기는 대목 등 주요 장면을 CG로 처리했지만 시청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TV보다는 영화에 가깝게 만들겠다”는 KBS측 주장이라면 아쉽다.

쓸만한 원작은 구하기 어렵고 영상 역시 배경이 될 만한 장소들이 대부분 현대화된 상태여서 제대로 찍기 어렵다는 게 제작진의 하소연이다.

그러나 다른 프로도 아닌 ‘TV문학관’이라면 단막극은 물론 이전 ‘TV문학관’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영상문법을 개발해야 되지 않을까.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