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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뛴다①]일산서 솥밥집 운영 이영숙씨

입력 | 1999-05-02 20:09:00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장이 혼자 벌어 가정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 왔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가장들의 실직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는 ‘가장 의존형’ 소득구조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창업 및 구직 전선에 주부들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 가정의 전통적 소득구조가 재편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튼튼한 가정’을 갖기 위해 ‘밖’으로 나서고 있는 용감한 주부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이영숙(李榮淑·28·여)씨는 여느 날처럼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손님들 주문 받으랴, 신발 정리하랴, 음식 나르랴 잠시도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인터뷰 중에도 손님이 들어오면 문쪽을 향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다. 피곤할 텐데도 목소리는 맑고 쾌활했으며 얼굴에는 웃음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일산 신도시 화정지구에서 솥밥집 ‘가마고을’을 운영하는 이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신나는 나날이다.

“같이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늘 웃는 절더러 ‘깜찍이 사장님’이래요.”

작년 11월 창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사장님’이라고 불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7년전 판매원으로 근무하던 백화점에서 만난 남편(35)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이씨는 ‘살림 잘하는 주부’ 역할에 만족했다. 그러나 작년초 새로 시작한 가구점이 잘 안돼 수천만원을 날린 남편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면서 이씨는 “내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함께 살고 있는 시부모님들은 처음에 맹렬히 반대했다. 그래도 며느리가 뜻을 굽히지 않자 평소 ‘아버지’‘엄마’라고 부를 만큼 흉허물 없는 사이인 시부모님들은 “잘 할 수 있겠냐”면서 걱정스러워 했다.

이씨 자신도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 했던 건 마찬가지.그럴 때마다 ‘약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대신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우연히 먹어본 솥밥 맛을 잊지 못한 이씨는 아이템을 솥밥집으로 정했다.

다음은 가게를 낼 위치 선정. 몇번 외식을 하던 일산 화정지구를 보름 동안 돌아다니면서 물색했다. 식당이 즐비한 동네지만 고깃집 밖에 없어 솥밥이라는 아이템이 충분히 먹혀들 것 것 같았다. 이씨는 본사(02―487―0404)가 권하는 대로변 자리를 사절하고 대로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상가를 택했다. 주변에선 ‘죽은 상가’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씨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 단위로 외식하기에는 대로변보다는 한적한 곳이 더 나을 것 같더군요.주차하기에도 편하구요”

21평 짜리 가게를 주변에 비해 싼 편인 보증금 4천만원 월세 1백40만원에 얻었다. 이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과 저녁 퇴근 무렵에는 손님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정도.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벤치까지 만들었다. 한달 수입은 평균 2천7백만∼3천만원. 인건비 집세 관리비 잡비 등을 제하고 나면 이중 30∼35% 정도가 순이익으로 잡힌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이씨의 성격도 손님을 끄는 요인. 남편은 손님의 입장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하는 ‘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 남편은 굴솥밥 등 독특한 메뉴를 연구개발해 본사에서 이를 배워가기도 했다.

“돈도 돈이지만 한동안 잃었던 웃음을 되찾은 게 제일 기뻐요”

‘이 사장님’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