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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장춘/관료제도 개혁을 위해

입력 | 1999-04-01 19:51:00


2차 정부조직 개편안이 확정되면서 판검사와 외교관의 직급 하향조정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건국 이후 정부조직에 변동이 있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메뉴다. 이번에도 공무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그 결과는 과거처럼 흐지부지되거나 개악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인사법과 조직법이 각기 따로 노는 한국의 관료제도는 권위주의적 ‘벼슬 분배’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5·16 군사쿠데타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세력은 공신들에게 감투를 갈라 주고 정권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 집단을 회유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로 인해 공무원 계급은 조선왕조의 품계(品階)제도나 일제의 식민관료적 잔재를 씻어버리지 못하고 국사의 효율적 수행에는 아랑곳없이 그 계단의 확장을 거듭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권력기관의 직급이 올라가고 권력은 없더라도 국가원수의 직할 하에서 국가수준의 일을 하는 외교관이나 또한 별볼일 없는 자리에 앉은 공무원들의 허울벼슬이 높아지곤 했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자리를 자주 바꾸면서 진급의 사닥다리를 잘 타고 보직을 갈라먹는 싸움에서 이겨야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계급제도로 인해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생기고 정원(定員) 외의 인력을 터무니없이 끌어안고도 모자라 소위 인사적체의 해소를 위해 자리를 더 만들어 내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또한 진급은 공직사회에 부정비리의 씨앗을 뿌리고 공무원사회 내의 갈등과 스트레스와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누가 높고 낮은가를 겨루게 하고 어처구니없게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볼 때 참으로 한심한 작태이고 공무원 개인으로 볼 때 참으로 소모적인 시달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조직의 일부인 공무원 인사제도는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그리고 민주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혁돼야 한다. 일부 공무원의 직급조정에만 국한하지 말고 철저한 기능주의 정부를 만들 각오로 시대착오적이며 역기능적인 공무원 계급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혁신적 발상을 해 볼 만하다.

군 경찰 세관 등 제복을 입는 특수한 공무원을 제외하고 미국은 물론 일본을 포함해 세계의 어느 나라가 공무원 계급제도를 두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연공 호봉제를 기본으로 보직을 향해 경쟁을 시키고 직종에 따른 수당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제도다.

외교관의 경우에는 국가의 명예와 권위를 대표하고 군처럼 기율이 엄하게 요구되는 직종이라는 이유로 외교관의 국제적 계급을 국내적으로 준용하는 나라가 예외적으로 있다. 그러나 일본 등 거의 모든 국가가 외교관도 다른 공무원처럼 다루고 있다.

시행 초기부터 파행을 서슴지 않아 온 한국의 외무공무원법은 국가 인사제도의 큰 틀 속에서 그 폐지를 포함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받아 마땅하다. 건국 후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의 대표라는 상징성 때문에 국제적으로 높게 취급되고 있는 대사 직급을 공무원의 국내 계급에 유추해 계속 흔들어대는 것은 나라의 위신과 체통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자학행위와 다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성씨 뒤에 벼슬이나 감투나 호칭을 붙이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부질없이 낭비한다. 이처럼 허황하고 비생산적인 구습을 버리고 이성적이고 경쟁력있는 세계인(The Global Man)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부가 어느 때보다도 상식과 지혜와 용기를 더 발휘해야 한다.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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