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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택칼럼]張夏成과 글로벌 스탠더드

입력 | 1999-03-19 19:19:00


장하성(張夏成·46)고려대교수. 그에게 오늘(20일)은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벼르고 별러온 결전의 날이다. 싸움 상대는 4개재벌그룹의 주력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대우 SK텔레콤.

▼대기업과 결전의 날 ▼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소액주주운동의 선봉에 선 장교수가 이끄는 참여연대 ‘전사’들은 오늘 오전 이들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불꽃튀는 공방전을 벌여야 한다. 덩치로 보면 강아지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할까. 결과가 뻔한 싸움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기업들은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떳떳지 못한 자세를 먼저 드러냈다. 싸움의 날짜와 시간을 20일 오전으로 입을 맞췄다. 상대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전에 없던 일이다. 또 일요일자 신문이 없는 토요일을 택한 것도 싸움의 모습이 언론에 되도록 작게 보도되도록 하기 위한 계산인 듯하다.

이보다 더 기업들이 약세를 보인 것은 장교수측이 요구하는것 중 일부를 받아들이겠다며 사전 협상을 벌인 것이다. 당일 주총현장에서의 열전(熱戰)이나 확전(擴戰)을 피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이 협상을 통해 장교수측은 감사위원회 신설 등 어느 정도 얻을 것은 얻어냈으니 일단 싸우지도 않고 꽤 성과를 올린 셈이다.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가 집행이사를 견제 감시하는 장치다.

2년전 이 운동이 시작될 때 기업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기업들의 태도가 왜 이렇게 달라졌나. 지난해의 악몽(惡夢)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 지난해 이 회사주총에서 참여연대소속 소장 경제학자와 변호사들은 독단적 경영과 편법상속 등을 물고 늘어졌고 회사간부들은 이를 막느라 13시간동안이나 진땀을 흘려야 했다.

재벌그룹에는 ‘눈엣가시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장교수 등 소액주주운동가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검은 장막을 걷어치우라는 것이다. 경영을 투명하게 하라는 주문이다. 절대적 지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총수의 전횡적 경영을 막고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제를 확립하기위한 장치를 마련하라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소액주주들이 연합해 이사를 뽑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일정규모이상의 계열사간 내부거래는 사외 이사들의 승인을 받고, 회사장부도 일반 주주들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라는 것 등이다. 이런 투명성과 책임경영 보장을 위한 장치들이 선진국 수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돼야 진정한 재벌개혁이 이뤄지고 다시는 IMF사태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 재벌들의 수준은 아직도 멀었다는 게 소액주주운동가들의 평가다. 글로벌 스탠더드만 찾다보면 ‘아시아적 가치’ ‘한국적 가치’는 어디로 가느냐는 소리도 많지만 우리가 세계속에서 생존해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조건들을 갖추는게 시급하다.

▼‘투명한 한국’으로▼

며칠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정부에 제시한 요구사항을 보면 그중에는 분명히 내정간섭적인 것들이 적지않다. 수입차(車)의 혜택을 홍보하라, 퇴직금제도를 의무에서 자율로 변경하라, 상여금을 퇴직금계산에서 제외하라는 것들이 그 예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 중에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원칙에서 보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들도 많다. 회계원칙을 국제규범과 기준에 가능한한 빨리 일치시켜라, 주주권리 강화를 위한 추가조치를 도입하라, 내부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는 것들이 그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여기에 비추어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외에 글로벌 스탠더드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무엇일까. 정치 교육 법조 그리고 반드시 언론이 포함돼야 한다고들 말한다. 모두 수입이 안되는 것이라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행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한참 멀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투명치 않다. 아직도 감(感)으로 판단한다. 아침에 얘기한 것을 저녁에 뒤집는다. 오늘 이쪽에서 무슨 말을 흘리면 내일이면 저쪽에서 주워담느라 야단들이다. 국가 앞날을 좌우할 문제도 국민이 알 듯 모를 듯 얘기하는 사람이 정치단수가 높다는 소리를 듣는다. 매사 이런 식이니 모든 게 불투명하다. 앞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국민은 불안하다. 투명성,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시대 정치의 요체다.

어경택〈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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