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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법원上]사건나면 봉합급급…불신 키웠다

입력 | 1999-02-06 20:08:00


《법원도 흔들린다. 검찰파동에 이어 한 부장판사가 사법부의 부끄러운 부분을 과감히 파헤친 글을 공개 했다. 전례없는 방식의 이의제기, ‘자성(自省)선언’에 대해 위 아래 판사들이 당혹해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휘두르는 인사권이 ‘소신재판’에 미치는 영향도 말하고 있다. 판란(判亂)인가, 건전한 제언인가. 파문의 뿌리를 살펴보고 사법부 개혁과제를 점검한다》

“93년 사법개혁 파동 때나 97년 의정부사건 때 법원의 모든 문제를 확실히 풀어버렸어야 했는데….” 수원지법 문흥수(文興洙)부장판사가 법원 자체통신망에 띄운 ‘자성 선언’글을 읽은 지방의 한 중견판사는 독백조로 말했다. 법원 쇄신을 위한 기회가 있었지만 쉬쉬하고 덮고 지나가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었다.

법원이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 직접적 원인은 대전 이종기(李宗基)변호사의 수임비리가 계기이지만 사법개혁파동 의정부사태 등이 터졌을 때 얼버무리고 넘어간 것이 결국 문부장판사의 ‘자성선언’ 같은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특히 의정부사건 이후 대법원이 과거의 전관예우와 향응 또는 떡값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한 뒤 철저한 개혁을 진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그러나 대법원이 판사 몇명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처리해 판사들에게 불만을 산 것은 물론 불신을 더욱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전 법조비리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비리의 주역인 이종기변호사가 검찰출신이어서 주로 검사들과의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드러났기 때문에 법원은 ‘이웃집 일’로 지켜보는 정도였다.

떡값이나 관행에 대해서도 ‘재판만 제대로 깨끗하게 하면 되지’하는 인식이 법관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서울지법 단독판사 43명과 부산고법 배석판사 18명도 법원 내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관행인 떡값 전별금 등으로 여론에 떠밀려 판사를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엄격하고 시대의 흐름은 과거식의 ‘관행’도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부장판사의 지적도 바로 지금처럼 돌팔매질당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자는 주장으로 새기는 이들이 많다.

‘팔이 안으로 굽는’현상, 대법원장휘하의 일사불란한 인사시스템, 거물변호사를 존중하는 판사들의 의식, 이런 것들이 크고 작게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 대해서 자각하고 개선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다른 판사들도 물론 ‘언론의 일방적인 매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법원이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심각히 고민할 때가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사법제도의 낙후성으로 인한 법률서비스의 부실로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됐고 향응 떡값 전별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판사〓비리집단’으로 호도됐다는 것.

그러나 문판사의 글을 계기로 판사들이 집단행동이나 서명운동 등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법원 내부의 중론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문판사가 제기한 문제는 내부에서 차근히 풀어나가야할 ‘장기과제’”라며 “검찰의 ‘정치검찰’논란과 같은 ‘핫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판사들의 집단 행동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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