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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학년도 서울대 논술문제]

입력 | 1999-01-11 14:50:00


[문제] 다음중 (가)는 혈족 보존을 향한 동물의 행동을 설명한 글이며 (나)는 민족에로 수렴하는 `아(我)'를 강조한 글이다.

(가)의 설명을 고려하여 `대아(大我)'를 강조하는 (나)의 견해에 어떤 의의와 문제점이 있는지 논술하라.

(가) 과거에는 동물의 세계에서 각 개체의 이익 추구가 사회 행동 진화의 원동력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동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희생하고 협력하는 행동이 그 개체에게는 손해일지라도 혈족을 보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꿀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적 동물에서 이러한 행동의 예를 찾을 수 있다.

꿀벌사회에서는 여왕벌과 수펄이 생식기능을 담당하고 암컷이지만 생식능력이 없는 일벌은 동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평생토록 일만 한다.

여왕벌이 낳은 알 중에서 수정이 되지 않은 알에서는 수펄이 태어나고 수정이 된 알에서는 암컷이 태어난다.

태어난 암컷은 여왕벌이 분비하는 페로몬에 의해 난소 발달이 억제되어 생식능력이 없는 일벌이 된다.

만약에 일벌이 생식이 가능하여 자손을 본다고 하는 경우 자손에게는 자신의 유전자가 반만 전달되는데 비해 한 여왕벌에게서 태어난 일벌 자매는 유전자의 4분의 3이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벌은 자기 자손보다도 일벌 자매와 혈연적으로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벌은 자신이 직접 생식을 하기 보다는 여왕벌이 낳은 자매를 열심히 키우고 동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평생동안 일하는 편이 자신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후손들에게 더 많이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일벌과 여왕벌의 분업조직이 꿀벌의 혈족 보존에 더 유리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설치류에 속하는 프레리도그라는 동물은 집단으로 굴속에 서식하는데 그 집단 내에서 하위에 속하는 동물이 굴 밖에서 보초를 선다.

그러다가 포식자나 침입자가 나타나면 자신이 큰 위험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프레리도그들에게 경계 신호를 보내어 위험을 피하게 한다.

프레리도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보호함으로써 그들이 공유하는 유전자가 그 개체군에서 영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동물의 이러한 이타행동도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많이 갖는 근연(近緣) 개체들을 남기고 그 개체들을 통해서 자신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미국 텍사스 동남부에 서식하는 야생 칠면조는 짝짓기 상대를 찾는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끼리 서로 돕는다.

한 형제집단에 속하는 칠면조들은 일련의 싸움을 통해 순위를 결정한다.

짝짓기를 할 때가 되어 암수 칠면조들이 모여들면 칠면조 형제들은 암컷을 향하여 다함께 동시에 꽁지를 펴고 소리를 지르는 과시 행동을 한다.

암컷이 응하면 순위가 가장 높은 칠면조만이 교미를 한다.

여기서 가장 우세한 칠면조를 돕기만 하고 자신은 교미를 하지 못한 수컷들은 얻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혈족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칠면조형제들은 한 배에서 태어나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우세한 형제를 도움으로써 결국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간접적으로 자손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어미 메추리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에 처한 새끼들을 구한다.

어미 메추리는 새끼들이 있는 둥지에 여우가 다가오면 여우 앞에서 상처를 입은 듯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여우를 유인하여 새끼로부터 멀리 떼어놓는다.

어미 메추리의 이러한 행동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도 결국은 자신의 유전자가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보장장치의 일종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이러한 희생이나 이타행동, 협력, 모성행동 등을 자신의 근연개체와 무리를 구하는 집단선택기제라고 설명한다.

즉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복제하여 효율적으로 멸족을 보존하는 적응 행동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이러한 행동들은 각 개체의 의지로 선택되기 보다 유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으며 심지어 개체는 유전자 증식을 위한 기계나 운반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 왼편에도 하나 있고 오른편에도 하나 있어서 가로놓이고 세로 선 것을 `아(我)'의 눈과 귀라 하며, 위에도 둘이 있고 아래에도 둘이 있어 앞으로 드리운 것을 `아'의 손과 발이라 하며, 벼룩이나 이만 물어도 가려워 긁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아' 의피부라 하며, 회충만 생겨도 통증이 그치지 않는 것을 `아'의 내장이라 하며, 팔만사천개의 검은 뿌리를 `아'의 머리카락이라 하며, 짧은 시간에 수십번 들이 마시고 내쉬는 숨을 `아'의 호흡이라 하며, 총총히 들어선 들판 무덤에서 새들이 쪼아먹게 될 것을 `아'의 뼈라 하며, 아득한 무덤 속에서 땅강아지나 개미가 먹어 치우게 될 것을 `아'의 피와 살이라 하며, 귀 눈 손 발 피부 내장 머리카락 호흡 뼈 피와 살을 일컬어 `아'의 신체라 하며 이 신체를 가리켜서 `아(我)'라 하나니, 오호라, `아'가 과연 이렇듯 미미하며 `아'가 과연 이토록 작은 것일까.

이러하다면 한 구석에 머물러 있는 `아'가 온 세상에 두루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며, 한때에 잠시 존재하는 `아'가 만고에 길이 남을 수는 없을지니, 오호라. `아'는 과연 이렇듯 미미하며 `아'는 과연 이토록 작은 것일까. 이러하다면 `아'는 바람과 같이 사라지며, 번개와 같이 잠시 번쩍이며, 물거품과 같이 허망하며, 부싯돌의 불과 같이 덧없이 소멸하는 존재이다.

저 공중에 빛나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은 고금에 한결같건만 유독 `아'만큼은 고작 수십년 세월을 겨우 살다가 형체가 사라져 없어지나니, 오호라, `아'란 과연 이렇듯 미미하며 `아'란 과연 이토록 작은 것일까.

`아'가 과연 이러할진대 `아'는 `아'를 위하여 슬퍼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는`아'를 위하여 절규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는 `아'를 위하여 머리를 풀어헤치고미친듯이 노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는 `아'를 위하여 슬피 통곡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는 `아'를 만든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으리니, 오호라, `아'는 과연 이러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정신적 `아'가 아니라 물질적 `아'이며, 영혼적 `아'가 아니라 육체적 `아'이며, 진아(眞我)가 아니라 가아(假我)이며, 대아(大我)가 아니라 소아(小我)이니, 만일 물질적 육체적인 가아(假我)와 소아(小我)를 `아'로 오해하면 이는 필사(必死)하는 `아'라, 한살때 죽지 않으면 열살때 죽을 것이며, 열살때 죽지 않으면 스므살때 죽을 것이며, 스므살때 죽지 않으면 서른살이나 마흔살때 죽을 것이며 서른살이나 마흔살 때 죽지 않으면 쉰살이나 예순살때 죽을 것이며, 쉰살이나 예순살때 죽지 않으면 일흔살이나 여든살 때 죽을 것이니, 설사 오래 산다고 한들 백살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 [중략] ...... 이제 물질과 육체의 세계를 넘어서서 정신적 영혼적인 진아(眞我)와 대아(大我)가 `아'인줄 깨달으면 일체 만물중에 불사(不死)하는 존재는 오직 `아'인 것이다.

천지는 사(死)하여도 `아'는 불사(不死)하며, 해와 달은 사(死)하여도 `아'는 불사(不死)하며, 금석(金石)은 사(死)하여도 `아'는 불사(不死)하며, 초목은 사 (死)하여도 `아'는 불사(不死)하며, 깊은 바다속에 `아'를 던져도 소아(小我)는 사 (死)하나 대아(大我)는 불사(不死)하며,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에 `아'를 빠뜨려도 소아(小我)는 사(死)하나 대아(大我)는 불사(不死)하며, 총알이 `아'에게 비처럼 퍼부어도 소아(小我)는 사(死)하나 대아(大我)는 불사(不死)하며 `아'가 악독한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소아(小我)는 사(死)하나 대아(大我)는 불사(不死)하여,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오직 `아'만이 홀로 높고, 만물의 생멸(生滅) 변화중에 오직 `아'만이 소멸하지 않으니 신성하다 `아'여 영원하다 `아'여.

소아(小我)는 사(死)하는데 대아(大我)는 어찌하여 불사(不死)하는 것일까. 소아(小我)를 논할진대 `아'의 눈과 귀가 곧 `아'이며 손과 발이 곧 `아'이니,이는 육체에 구속된 `아'라, 눈으로 보는 것은 가로놓인 벽을 뚫지 못하며, 뛰는 것은 한 길 높이의 담장을 넘지 못하며 현미경을 가지고서도 온갖 미세(微細)한 것을 보지 못하며 기차를 타더라도 하루에 천리를 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아(大我)는 무엇인가. 곧 `아'의 정신이 그것이며 `아'의 사상이 그것이며 `아'의 목적이 그것이며 `아'의 주의(主義)가 그것이니 이는 무한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아'이니, 어디든 가고자 하면 반드시 갈 수 있어 원근(遠近)이 없는 것이 `아'이며 행하고자 하면 반드시 달성하여 실패가 없는 것이 `아'이다.

기구(氣球)에 의존하지 않아도 `아'는 공중을 날 수 있으며 여권이 없어도 `아'는 외국에 갈수 있으며, 역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아'는 천만 세(世)이전과 천만 세(世)이후에 두루 존재하나니, 누가 `아'를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 `아'를 방해할 수 있겠는가.

`아'가 국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릴진대 눈물을 흘리는 `아'의 눈만 `아'가 아니라 온 천하에 유심(有心)한 눈물을 흘리는 이는 모두 `아'이며 `아'가 사회를 위하여 피를 흘릴진대, 피를 흘리는 내 몸만 `아'가 아니라 온 천하에 가치있는 피를 흘리는 이는 모두가 `아'이며 `아'에게 철천지원수(徹天之怨수)가 있으면 온 천하에 칼을 들고 떨쳐 일어나는 이는 모두가 `아'이며 `아'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치욕이 있으면 온 천하에 총을 들고 모이는 이는 모두가 `아'이며 `아'가 무공(武功)을 사랑하면 천백년전에 나라를 세우거나 영토를 확장했던 동명성왕(東明聖王) 부분노(扶芬奴) 광개토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대조영 최영 이순신이 모두 `아'이며, `아'가 문학을 좋아하면 천만리 밖에서 문필 활동을 했던 루소 칸트 볼테르 셰익스피어 해밀턴 마치니 다윈 스펜서가 모두 `아'이며 `아'가 봄빛을 즐기면 수풀 가운데 꽃사이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벌과 나비도 모두 `아'이며 `아'가 자연 속에서 술 마시고 읊조리면 수초(水草) 사이에서 유유히 헤엄치거나 뛰어오르는 물고기와 자라가 모두 `아'이다.

...... [중략]...... 오호라, 온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 자신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가? 혹 입과 배를 `아'라 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입과 배만 채우고자 하며, 혹 피부와 살을 `아'라 하여 좋은 옷으로 피부와 살만 따뜻하게 하고자 하며 혹 목숨을 `아'라 하고 혹 집안을 `아'라 하여 치욕이 오든 부자유가 닥치든 이것만 보존하고 이것만 유지하고자 하다가 조국을 망하게 하는 후손이 되거나 국가의 죄인이 되며, 동포의 도적도 되고 인류의 악마도 되나니, 오호라, 자신의 진면목, 즉 `아'가 발현하면 어찌 애통해 하지 않겠는가.

...... [중략] ...... 이 진면목만 발현하면 저 하잘것 없는 몸뚱이는 흩어져 연기가 되어도 좋으며 흩어져 구름이 되어도 좋으며 피어서 꽃이 되어도 좋으며 맺혀서 열매가 되어도 좋으며 정련(精鍊)하여 황금이 되어도 좋으며 부서져 모래가 되어도 좋으며 물에 잠겨 물고기나 자라가 되어도 좋으며 내달아 호랑이나 표범이 되어도 좋으며 하늘에 올라도 좋으며 땅속으로 들어가도 좋으며 불에 태워져도 좋으며, 물에 던져져도 좋다.

...... [중략] ......슬프도다,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눈을 감으면 `아'가 죽었다 하며 엎어져 쓰러지면 `아'가 죽었다 하고 필사(必死)의 `아'를 잠시 머물게 하고자 하여 불사(不死)의 `아'를 욕되게 하며 필사(必死)의 `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고자 하여 불사(不死)의 `아'를 괴롭게 하며, 필사(必死)의 `아'를 즐겁게 하고자 하여 불사(不死)의 `아'를 번민케 하며, 필사(必死)의 `아'를 편안하게 하고자 하여 불사(不死)의 `아'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니 오호라,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지금 내가 인간 세상을 유람한지 이십여년에 사람들을 살펴보니 필사(必死)의 `아'를 위하여 구구하게 애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필사(必死)하리니, 혹 굶어 죽고, 혹 배불러 죽고, 혹 근심하여 죽고, 혹 즐거워 죽고, 혹 말라 죽고, 혹 발광하여 죽고, 혹 신음하여 죽거나 낭패하여 죽을 것이다.

어찌 내 눈앞의 사람만 이렇게 죽겠는가. 과거 사람도 이렇게 죽었으며 미래의 사람도 장차 이렇게죽을 것이다.

...... [중략] .... 그러니 필사(必死)의 `아'에 연연해 하지 말고, 불사(不死)의 `아'를 보아야 할것이다.

필사(必死)의 `아'를 보면 `아'는 끝내 필사(必死)할 것이고, 불사(不死)의`아'를 보면 `아'가 길이 불사(不死)할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나의 이 주장이 어찌철학적 공상으로 염세적(厭世的) 비판을 고취하려는 것이겠는가. 다만 우리 뜻있는 대중들을 불러서 본래의 진면목을 분명히 깨달아 생사(生死)의 관문을 꿰뚫어보게하고 이 세계에 씩씩하게 전진하다가, 저 소아(小我)가 칼에 찔려 죽으면 이 대아(大我)는 그 곁에서 조문(弔問)하며, 저 소아(小我)가 총알에 맞아 죽으면 이 대아(大我)는 그 앞에서 축하하여, 몹시 기쁘게도 `아'가 길이 불사(不死)함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가)는 사회생물학 관련 논저에서 발췌.요약한 것이며 (나)는 신채호가 1908년에 발표한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를 현대어로 옮긴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