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국회 본회의에서 사흘에 걸쳐 1백40여건의 의안을 변칙처리했다. 사흘 연속 날치기는 우리 의정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의 선진화를 약속했던 ‘국민의 정부’가 날치기 신기록을 세웠으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연립 여당이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자행할 수는 없다. 앞으로 더욱 악화될 정국 파행의 책임과 부담도 일차적으로 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야당의 잘못도 크다. 상임위에서 통과된 안건들을 본회의에서는 통과시킬 수 없다는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신들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는 국회 529호실 사건을 이유로 시급한 계류법안까지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 야당이 8일부터 단독소집한 제200회 임시국회를 성립시키기 위해 제199회 임시국회의 막판 본회의를 거부했다면 그것도 당당하지 않다. 그러잖아도 제200회 임시국회는 각종 비리혐의로 구속될지도 모르는 자당(自黨)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 국회’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당의 처사는 훨씬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야당이 본회의 불참을 통보했던 5일 여당이 민생법안들을 단독처리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는 쟁점법안과 경제청문회 관련 안건을 변칙처리한 6일과 7일의 본회의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들을 끌어들여 원내 과반수를 만들더니 고작 한다는 것이 날치기라면 한심하다. 여당은 ‘정치안정’과 ‘개혁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과반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날치기가 개혁이고 정치안정인가. 야당이 변칙처리를 못 막았느냐, 안 막았느냐의 논의는 여당의 오만한 국회운영 앞에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제 여당은 경제청문회마저 단독으로 열 것 같다. 그러나 야당이 반대하는 ‘반쪽 청문회’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며 그 결과가 설득력을 갖겠는가. 단독 청문회는 명분에도 맞지 않고 소기의 성과도 거둘 수 없다. 여당은 단독처리한 의안 가운데 최소한 청문회 안건은 야당과 다시 협의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본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당도 협의에 응해야 옳다. 이제까지처럼 협상을 사실상 거부하는 듯한 자세는 여당 단독 청문회의 구실을 만들어줄 뿐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파행정국의 장기화다. 여야는 이제라도 이성(理性)을 되찾아 대화를 모색하기 바란다. 그러자면 먼저 여당이 날치기를 사과하고 성실한 자세로 야당을 대해야 한다. 여야가 서로 등을 돌려서는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못한다. 여야는 정치를 보는 국민의 불안과 혐오를 씻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