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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너 리그 (18)

입력 | 1998-11-09 19:28:00


교유 (11)

조국은 후원금까지 얻어냈다. 중국집 주방장 아저씨를 스폰서로 잡은 것이다.

“포스터는 만들 거 아냐? 그 밑에다가 칠성루라고 이름만 써주는 건데 뭐 어때?”

포스터 꼴이 얼마나 웃기겠냐고 투덜대는 나에게 조국은 “근데 말야. 짜장면의 왕자, 그 글씨까지 넣어주겠다고 했더니 그럼 돈 더 내는 거 아니냐고 거절하더라. 그 아저씨가 통밥은 뻔해”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 돈을 구경도 못했다. 준비 비용은 많은 부분 승주의 주머니 안에서 억지로 나왔는데, 승주 어머니가 예비역 소령의 미망인으로서 원호청에서 받은 연금의 일부였다.

꼭 막내에다 외아들이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승주는 핑계가 많고 귀찮은 일이라면 이리저리 빠지기 일쑤였다. 전시회 준비만은 열심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요즘 그는 소희에 대해 “계집애들은 한 번 잘해주면 끝에 가서는 꼭 피곤하게 해”라며 불평하기 일쑤였다. 속으로는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멋진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소희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리라고 별러왔던 것이다.

승주는 잔재주가 있는 편이라 그림도 제법 그렸다. 포스터 그리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 전시할 편지가 많지 않았지만 그 역시 승주가 요령껏 간격을 벌려 배치하고, 사이사이 굴렁쇠를 밀고 가는 꼬마나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 일곱마리 따위의 컷을 그려넣어서 꾸며보기로 했다. 컷 옆에 적을 명언 명구는 내가 책에서 발췌해오기로 했다. 개교기념일 팜플렛에 실릴 펜팔부장 조국의 인사말 문안 역시 내 차지였다.

그것보다 우선 해야 할 일은 홍보였다. 함부로 남의 학교에 홍보물을 붙이기 어려운 학도호국단 시절이었으므로 몇 장 안 되는 포스터는 주로 교회나 성당의 게시판에 붙여졌다. 우표 수색 때 활약했던 여학생들이 이번에도 적극 나섰고 학교에 가서도 소문을 내주었다.

모든 걸 건성으로 지나치는 것 같던 두환이 그제서야 한마디했다.

“그래서 조직이 좋다는 거야.”

언제나 주장도 안 하고 참견도 안 하는 방관적인 태도였지만 두환은 펜팔부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상징적 존재’라고나 할까. 다른 부 아이들은 아무리 아니꼬워도 우리를 섣불리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주는 두환에게 번번이 트집을 잡았다. 두환은 그런 승주를 일일이 상대하지 않았다. 묵묵히 내려다보기만 하더니 한번은 아주 인상적인 어록을 남겼다.

“남자는 아무데나 나서고 걸치지 않는 거다. 걸어야 할 때가 오면, 그때는 모든 걸 걸지.”

두환 때문에 전시회가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두환네 18동인과 대결을 벌였던 패거리들이 전시회에 일차왕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조직을 몰고 와서 전시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거나 구경온 여학생들의 행실을 나무라며 이름을 적어갈 필기구까지 갖추고 있다고도 했다. 헛소문이었다. 행사를 두고 이래저래 분위기는 고조되어갔다.

만수산 4인방은 전시회를 성공시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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