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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IMF 앞세운 美횡포

입력 | 1998-10-14 19:10:00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받은 돈을 국내산업 지원에 쓸 경우 추가 자금공급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자세는 대단히 유감스럽다. 미국이 이 기금의 최대 출자국이긴 하지만 이번 결정은 IMF의 자율적 운용을 간섭하는 행위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IMF가입국 전체에 대한 간섭이기도 하다. 왜 우리가 국제기구의 자금을 쓰면서 미 재무부장관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 의회를 중심으로 마련된 문제의 ‘IMF지출법안’은 국내산업과 경합관계에 있는 미국 기업들의 로비에 의한 산물이라는 관측이다. 경제위기를 틈타 타국의 경쟁기업을 제압하겠다는 심산이라면 경제초강국답지 않은 발상이라고 하겠다. 미국은 이미 환란 초기 IMF자금 공여조건으로 우리나라와 쌍무적 관계에 있던 대부분의 통상현안들을 자국에 유리하게 조정했다. 그것도 모자라 IMF수혜국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만 찍어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주장하는 공정경쟁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지금 세계는 역사 이래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책임있는 나라들이 나서서 국제금융질서를 개편해야 하는 시기다. 이런 때 모범을 보여야 할 미국이 자국이기주의에 빠져 특정국 견제에 나선다면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IMF가 어느 특정국가의 산하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기구의 설립목적이나 운용취지에 미국의 결정이 어느만큼 부합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 IMF를 앞세워 내국기준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힘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IMF자금이 국제수지 방어에만 쓰이기 때문에 미국이 그런 결정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런 차원에서 해석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흡사 구제금융을 받아 기업들에 뿌리는 데나 사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국제신인도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슨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 워싱턴 조야의 친한 인사들이 우리나라 민관 양면의 대미 로비를 그토록 강력히 촉구해왔지만 심각하게 귀담아 듣지 않아 온 것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차제에 대미 로비 능력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지금 한국민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오로지 IMF와의 합의사항을 충실히 지켜 하루 빨리 당당하게 국제경제에 복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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