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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인격장애]행동-생각 『멀쩡』 대인관계 『삐딱』

입력 | 1998-09-22 19:26:00


“밤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폭주족, 컴퓨터 통신의 ‘번개팅’으로 만나 하루만에 ‘사랑’을 나누는 사람, 직장생활의 작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여러 일터를 전전하는 사람….”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개성이 강한 신세대’가 아니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면?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류인균교수(02―760―2458)는 “이들은 현대인의 새로운 정신질환인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BPD)’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최근 국내에서도 이들의 뇌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경계선 인격장애. 성격이나 행동 방식이 특이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격장애’중 가장 흔한 질환. 국내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될 정도. 우리나라에서는 류교수가 96년2월∼98년8월 서울시내 3개 대학의 여대생 2백85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5.6%가 경계선 인격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은 일반적으로 정신병과 신경증 그리고 인격장애로 나뉜다.경계선인격장애는 ‘정신병(Psychosis)’과는 달리 행동하고 사고하는 능력은 정상.다만 대인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어떤 사람?〓서울의 한 여대생 김모양(23)은 고교시절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 진학 뒤 삶의 목표를 잃고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싫증을 자주 느껴 남자 친구도 수시로 바꾸었다. 충동적으로 남자 친구에게 먼저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관계 후 곧 자책. 최근 학교에 가다 갑자기 우울해져 경기 청평호수로 가 자살을 시도.

경계선 인격장애자는 이처럼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가 급변하고 △감정의 변화가 극심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불안정한 특징을 보인다(진단기준 참고). 여성 환자의 수가 남성보다 3배 정도 많으며 청소년기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개인적 요인〓△성적 신체적 학대, 무시당함, 부모와의 이별경험 등 어린 시절의 정신적 충격 △유대가 약하거나 대화가 부족한 가정 환경. 이런 성장 환경이 뇌발달에 영향을 줘 성인이 되면 뇌구조와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류교수는 국내의 정상인과 경계선 인격장애자 각 25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 비교분석한 결과 환자의 전두엽 부피가 정상인에 비해 작은 것을 발견. 그는 이를 미국의 정신의학 학술지인 ‘정서장애지(JAD)’ 9월호에 발표했다. 전두엽은 복잡한 사고나 중요한 일의 결정 등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

▼90년대라는 사회적 환경〓90년대에는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고 △핵가족화와 더불어 개인주의 가치가 용인돼 충동적이며 감각적인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은 자신의 충동적 성향을 다른 사람의 간섭없이 비교적 쉽게 나타내고 진행시킬 수 있게 돼 경계선 인격장애자가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왜 문제인가?〓경계선 인격장애자들은 정신병 환자와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정상이어서 치료하면 정상인으로 금방 회복. 그러나 ‘병’으로 여기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문제. 점차 능력을 잃고 사회에서 ‘일탈(逸脫)’한다. 류교수는 “개인의 일탈은 ‘가정의 문제’로, 곧 ‘사회의 불안정’으로 연결된다”며 “주위에서 환자로 생각해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 이들을 그대로 두면 증상이 점차 악화돼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광적인 행동을 보이는 ‘단기 반응성 정신병’이나 우울증 자살시도 등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될 수 있다.

▼치료 방법〓의사와의 면담치료가 기본. 충동성이나 공격성이 심하면 항우울제 항충동제 등 약물도 사용. 자해행동을 보일 때는 전문의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병원에서는 1년 정도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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