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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그룹 구조조정]『부실경영-정책잘못 물어야 한다』

입력 | 1998-09-06 20:37:00


《‘과잉생산을 줄이고 생산성을 증대시키지 않는 단순 기업결합은 아무 의미가 없다.’ 5대그룹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들의 인력 및 설비조정이 ‘빅딜’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현실은 정반대. 그룹마다 후속협상에서 주도권 잡기에만 분주할 뿐 정작 중요한 통합회사의 조직과 인력재편, 생산 유통망 정비 등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 이에 따라 구조조정 작업을 금융권 지원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특히 기업 모두가 득을 보고 어차피 정부 및 금융지원이 불가피하다면 경영부실 및 실패에 대한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도덕적 해이’를 먼저 방지해야〓정부는 전경련이 구조조정안 발표와 함께 요청한 △세금감면 △독점규제 예외적용 등을 가능한 한 수용한다는 입장.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행의 부실채권 매입에 앞서 감자(減資) 경영진 문책이 이뤄졌던 것처럼 “시장에 잘못 진입했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경제연구소 임원 H씨는 “90년대 초 삼성과 현대의 유화산업 진입은 당시에도 과잉생산을 부추긴다며 큰 논란을 빚었다”고 전제, “책임추궁이 없다면 향후 방만한 투자를 묵인하는 꼴이 돼 특혜시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중공업 분야에서 독점과 경쟁체제가 반복되는 것은 정부의 시장전망 실패도 한몫했다”며 정부 당국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라는 입장. H은행 관계자는 “믿을 만한 중복인력과 설비의 정리계획이 없다면 재계가 요청하는 금융지원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덩치키우기’보다는 생산성향상〓이번 구조조정 대상 중 단일사 통합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석유화학 항공기 철도차량 반도체 등 4개 업종. 나머지 발전설비 및 선박엔진도 사실상 회사 통합이 전제돼 있다.

산업자원부 등 정부측은 재계의 구조조정안에 대해 “세계적인 업체와 경쟁할 정도로 덩치를 키우게 됐다”며 환영 일색. 이와 관련, 5대그룹은 7월말 1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부실사 퇴출’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보다는 ‘덩치키우기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쪽으로 향후 논의를 이끌어 나가기로 정부의 묵시적인 양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군살빼기. S경제연구소 K박사는 “이번 구조조정은 특히 중공업 분야의 민영화 실패인정→독과점 회귀로 볼 수 있다”며 “통합사들이 군살빼기에 실패하면 독점의 폐해만 두드러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면 과잉인력 유지비용까지 국민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

▼중복과잉 해소를 통합사 경영진에 맡긴 셈〓3일 구조조정안 발표 직후 각 그룹들은 당장 임직원 및 협력업체들의 동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통합사의 운영 및 중복 인력설비의 정리문제에 대해선 전혀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도체 발전설비 등 일부 분야에서 경영권 다툼을 본격화할 태세다.

현대석유화학의 경우 1천6백명의 인력으로 연산 50만t짜리(에틸렌 기준) 1기 설비를 가동해오다 연초 비슷한 규모의 설비를 증설했다. 추가 소요인력은 불과 2백명. 같은 단지내 50만t 설비를 갖춘 삼성종합화학과 회사를 합치면 어림잡아 수백명의 잉여인력이 나온다는 계산.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이 통합하는 철도차량 사업도 마찬가지. 대우중공업 관계자는 “경기 의왕 경남 창원 부산(다대포) 등지에 흩어진 각사 설비는 고속철 전철 객차 등으로 용도에 맞춰 조정할 수 있지만 중복인력 처리는 절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특히 중공업 노조의 결집력이 강해 인원조정에 엄청난 진통이 예상된다는 것.

A경제연구소 L연구위원은 “이번 구조조정안은 중복과잉 해소를 시장 자율에 맡긴 것이 아니라 통합사 경영진에 맡긴 셈”이라며 “그룹들이 합심해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래정·이희성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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