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조9천8백억 실직대출발표, 한달간 겨우 101億실적

입력 | 1998-05-22 19:39:00


“직장이 있는 사람도 무더기 연체가 발생하는데 실직자는 더 심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대출해주기가 겁나요.”(은행 대출담당자)

“실직자에게 보증서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실업자를 두번 울리는게 정부대책인가요?”(실직자 박모씨)

정부의 실업자 대부사업이 겉돌고 있다.

정부는 실직자에게 생활자금 주택자금 영업자금 등으로 총 1조9천8백억원을 지원, 실직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으나 정작 대출 ‘시혜’를 받는 실직자는 극소수에 불과해 무책임한 탁상행정이라는 원성을 사고 있다.

▼지원현황〓국민 주택 상업 평화 농협 등 5개 시중은행은 지난달 15일부터 지금까지 1천7백33명에게 1백1억원만 대출했다. 목표금액의 0.5%에 그쳤다.

주관기관인 근로자복지공단은 실직자 36만명을 대출 추천할 계획인데 20일까지 추천실적은 3천9백명(1.1%). 공단의 추천을 받은 실직자 가운데 60%는 보증인이 없어 대출받지 못한 형편이다.

▼문턱높은 대출창구〓조모씨(48·여)는 농협 신사동지점에 생계비 5백만원, 학자금 3백만원 등 8백만원 대출을 신청했으나 ‘보증인이 부적격자이니 다른 보증인을 구해오라’는 직원의 말에 화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조씨는 “사위를 보증인으로 내세웠더니 농협측은 ‘직장을 다닌지 1년밖에 안돼 보증인으로 부적합하다’고 했다”며 “실직자에게는 돈을 꿔줄 수 없다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부도난 회사 임원출신으로 집까지 저당잡힌 박모씨(47)는 국민은행에 생계비와 학자금으로 7백80만원을 신청했으나 ‘신용거래불량자로 올라와 있다’며 대출을 거부당했다.

▼엄격한 실직자 추천기준〓근로자복지공단은 △실직후 10개월 이내에 지방노동관서 등에 구직등록 후 3개월 이상 경과하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한 사람 △전용면적 25.7평이하 주택 거주자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 △재산세 과세액 10만원 이하 등의 조건을 갖춰야 대출추천서를 발급하고 있다. 구직등록한지 2개월이 됐다는 김모씨(35)는 “실직자가 먹고 살만하면 은행에 기대겠느냐”며 “심사요건이 그렇게 까다로워서야 어디 추천서를 제대로 받겠는가”고 반문했다.

▼은행의 고충〓시중은행의 한 대부담당자는 “정부의 실직자대출사업은 금융현장의 생리를 전혀 모른 채 탁상에서 급조한 ‘이름만 거창한’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각 시중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느라 혈안이 돼있는데 실직자들에게 대출해주겠느냐”며 “정부의 눈치를 봐서 보증인이나 확실한 담보를 제시한 실직자에게만 대출해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활성화 방안〓근로복지공단은 구직등록 후 경과기간을 1개월로 단축하고 주택규모와 재산세납부 제한 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노동부에 건의했으나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

실직자가 추천서를 받더라도 대출금은 은행이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은행이 적극적으로 돈을 꿔주도록 독려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평화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일부 보전해주는 등 탄력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강운·송평인기자〉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