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나온 우리 극영화의 원본이 한편도 남아있지 않은 가운데 37년 제작된 발성(發聲)영화 「심청전」 등 해방전 우리 영화 14편이 러시아 국립영화보관소에서 무더기로 발견돼 한국영화사 태동기 연구에 획기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사 취재진은 최근 모스크바 근교 러시아국립영화보관소에서 1937년 안석영(安夕影)감독이 제작한 극영화 「심청전」 3롤을 비롯해 국내에 없는 극영화 6편, 선전영화 8편을 찾아냈다. 「심청전」은 나운규(羅雲奎)의 「아리랑」이 제작된 이듬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대표적 여배우인 김소영(金素英) 석금성(石金星) 김신재(金信哉) 등의 생생한 연기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배경음악으로 애조 띤 판소리와 황해도 사투리, 소품용 가재도구 및 의상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일제후기 영화제작 관습과 생활상 연구에도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필름과 보관케이스에는 작품명 및 배역이 표기돼 있지 않으나 △러시아국립영화보관소의 한국 일본 영화가 모두 45년 이전 작품이고 △해방전 제작된 발성영화 「심청전」은 37년 작품이 유일하며 △심청 역을 맡았던 김소영의 모습이 국내에 보관된 스틸사진과 동일인물이어서 「심청전」이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작품명이 기록되지 않은 또다른 장편 극영화는 당시 지방 풍물과 창경궁 미용원 등 서울 풍경을 풍부하게 담은 가운데 항구마을 부잣집 한량이 상경의 꿈에 부푼 순박한 시골처녀를 도시로 유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 조선총독부와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만든 선전영화들은 식량증산 신사참배와 납세 독려 등 「영상미디어를 통한 내선일체화(內鮮一體化)」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어 일제강점통치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필름들은 모두 양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발성영화는 우리말 대사에 일본어 자막이었고 무성영화는 한글과 일본어 자막을 혼용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발견된 필름이 「심청전」임을 확인한 영화사연구가 김종욱(金鍾旭·60)씨는 『50, 60년대 작품들조차 소재가 불분명한 가운데 해방전 화제작이었던 「심청전」이 발견된 것은 영화사적으로 충격적인 일』이라며 『이들 작품의 국내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립영화보관소 바시엔코 발레리 이바노비치 과학정보센터 부소장은 『러시아는 2차 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를 대상으로 고문서 및 영화들을 수집해왔다』며 『3만여편에 이르는 소장 영화들은 95년에야 일반에 개방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반병희특파원·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