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 가녀린 몸매에 소녀같은 웃음을 지을 때가 많지만 그 뒤에는 강인한 의지가 숨겨져 있다. 이여사는 눈물과 고난의 내조(內助) 35년만에 남편의 꿈이자 자신의 꿈을 이뤘다. 이여사는 1922년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 램버스대 등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귀국해서는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 서울대사대 재학시절 후배인 정원식(鄭元植)전총리 등과 함께 우익활동을 주도했던 일은 유명하다. 이여사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부인과 사별한뒤 전세방을 전전하던 김당선자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이여사는 가족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70년대 이후 납치 망명 투옥 연금의 나날을 보내는 남편때문에 이여사의 삶도 시련의 연속이었다. 자식들에게는 엄친(嚴親)노릇을 해야 했고 감옥에 간 수많은 동지들의 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다. YWCA상임위원으로 사회활동을 하던 이여사의 등 뒤에도 늘 감시와 미행의 눈길이 따라 다녔다. 하지만 이여사는 때로는 김당선자를 대신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이처럼 반려자를 넘어 「평생동지」로 살아온 이여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이여사는 남편 못지않은 사회활동과 인권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여사는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말해 왔다. 여성 아동 노인 복지문제 등에 대한 그의 관심이 주목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런 활동도 요란하게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여사는 측근들이 감히 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대통령에게 그때그때 귀띔해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전달해주는 충실한 조언자 역할도 기대된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