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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55)

입력 | 1997-11-15 09:27:00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3〉 『주인님, 내가 수염과 눈썹을 깎고, 눈까지 뽑혀 이런 해괴한 몰골을 하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여주인 앞으로 나선 첫번째 탁발승은 이렇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한 도성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내 고국은 비록 크지는 않지만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숲과 눈부시게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셨고, 백성들은 그러한 아버님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는 형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백부님 또한 국왕으로서 다른 도성을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백부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나의 고국처럼 아름답고 오밀조밀하지는 않았지만 크고 웅장하였습니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해마다 백부님 나라를 찾아가 몇 달이고 거기서 지내곤 했습니다. 뱃길로 꼬박 열흘이 걸리는 백부님 도성을 찾아갈 때면 나는 언제나 행복감으로 들뜨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부님 댁에는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동갑내기 사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사촌과 나 사이의 우정은 각별했습니다. 내가 백부님 도성에 갈 때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살찐 양을 잡게 하고, 최상급의 포도주를 걸러 오게 했습니다. 정말이지 사촌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나에게 언제나 꿈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참 주연이 무르익어갈 무렵 사촌이 내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사촌, 한가지 긴한 부탁이 있는데 절대 반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게』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내 어찌 하나밖에 없는 사촌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어? 무슨 부탁인지 말해봐』 『내 부탁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네는 맹세를 해주어야 하네. 내가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거절하지 않겠다는 것과 내가 자네한테 한 부탁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걸 말이야』 그래서 나는 사촌이 어떤 부탁을 하든 거절하지 않겠으며, 그가 한 부탁을 일절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제서야 사촌은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베일을 쓰고 값비싼 패물들로 치장을 한 젊은여자하나를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나의 사촌에 비해 두어살 아래로 짐작되는 젊은 여자는 더없이 기품이 있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베일로 낯을 가리고 있는데다가 사촌의 등 뒤에 몸을 숨기고 서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여보게 사촌, 이 부인을 데리고 묘지로 가주게』 이렇게 말하고난 사촌은 내가 가야할 묘지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사촌은 말했습니다. 『이 부인과 함께 그 지하매장소에 들어가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주게』 사촌의 부탁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좀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만, 조금 전에 맹세한 바도 있고 해서 새삼스레 왈가왈부할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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