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신한국당 탈당계를 내기 하루 전인 6일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비장한 심경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신한국당의 사실상 「주인(主人)」이었고 그 전신(前身)인 민자당의 「대주주중 1인」이었다. 김대통령은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씨 등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한 직후인 96년 2월6일 「구시대와의 단절」을 외치며 민자당 간판을 내리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리고 1년9개월만에 떼밀리다시피 당에서 밀려났고 신한국당의 간판은 다시 내려질 운명에 처했다. 김대통령은 90년 1월22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자격으로 민정당총재였던 노태우대통령, 김종필(金鍾泌)공화당총재와 함께 「구국의 결단」이라며 민자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7년여 동안 92년 대선에서의 승리 이외에는 정치적 파란과 질곡이 그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93년 초 집권초반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폈으나 그 과정에서 민자당내 계파간 갈등과 불협화음은 증폭됐고 그 자신 실정(失政)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3당합당의 주역중 1인인 김종필대표가 당을 떠났고 민자당은 95년 「6.27」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비운을 맞았다.그 후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지난해 「4.11」총선에서 이회창(李會昌)씨 등 당외 유력인사들을 가리지 않고 영입, 어느 정도 설욕의 계기를 잡았으나 그 후유증에 발목을 잡혔고 곧이어 터진 한보비리사건, 아들 김현철(金賢哲)씨의 구속 등 정치적 파란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 김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여당에서 축출되는 사상 초유의 정치사적 기록을 남긴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최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