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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탈선-결석 제자, 사랑으로 감싼 어느 스승

입력 | 1997-10-15 20:30:00


지난 3월 서울 D고교 1학년 담임 김모(42)교사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사흘에 한번 꼴로 결석하는 경호(16·가명)때문. 평소 말도 없고 집에 전화를 해도 통 받는 사람이 없었다. 경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7년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이혼가정의 자녀. 이튿날 오후 김교사는 그날도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경호의 집을 찾아 나섰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속칭 「굴레방다리」밑의 방 두 칸짜리 전세집. 그는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나서야 방문을 열고 삐죽 내미는 경호의 얼굴과 마주쳤다. 『어, 선생님…. 들어오시면 안되는데…』 제지하는 경호를 제치고 방 문턱을 넘어서자 방안은 시장바닥처럼 어지러웠고 온갖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놈아. 아직 저녁 못 먹었지』 김교사는 구석에 던져진 라면 두 봉지를 끓였다. 찌그러진 라면냄비를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경호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경호의 아버지는 밤무대의 밴드마스터. 수시로 지방출장을 나가느라 한달의 절반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호가 밤이 되면 신촌의 한 록카페에서 새벽까지 웨이터로 일하곤 했다는 얘기도 비로소 알게 됐다. 경호는 그날 김교사에게 「전화는 반드시 받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부터 김교사는 아침이면 경호에게 「모닝콜」을 했고 경호는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1주일쯤 지나자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교사는 이제 직접 경호를 등교시키기로 결심했다. 매일 오전 6시면 김교사는 광진구 자양동 자신의 집을 나서 아현동으로 차를 몰았다. 이날부터 경호는 정말 달라지는 듯했다. 가끔씩 수업시간에 질문도 하고 학급 친구들에게 먼저 말도 걸고…. 그러던 지난 9월 초. 수업이 모두 끝난 뒤 경호가 느닷없이 교무실로 찾아와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선생님, 이거… 자퇴서예요. 노력해 봤지만 학교와 저는 도저히 맞질 않아요』 김교사는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허탈감에 빠져 경호를 음식점으로 데려간 그는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스스로 자신을 달랬다. 이 때 경호가 음식점주인에게 불쑥 던진 「꽁치 요리 질문」이 김교사에게는 번갯불이 튀는 것 같은 강렬한 힘을 솟구치게 했다. 『음식상에 꽁치구이가 나왔죠. 갑자기 경호가 주인에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이 꽁치는 어떻게 요리하는 거죠. 내일 아버지 오시는데 구워드리면 참 좋겠네」라고…』 김교사는 그런 녀석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 사회도 이혼가정의 자녀를 감쌀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집념을 불태웠다.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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