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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04)

입력 | 1997-09-23 07:54:00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30〉 『오, 여보, 미안해요. 진실을 고백하자면 난 상인도 아니고 도착할 짐도 없다오. 아니, 그야말로 한 푼 없는 알거지랍니다. 카이로에서는 남의 헌 신발을 고쳐주며 그날그날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내 생업이었답니다. 그뿐이 아니랍니다』 당신이 들으면 아마 기절을 하겠지만 나한테는 파티마라고 하는 아주 못된 아내까지 있는 몸이랍니다』 일단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마루프는 여기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마친 마루프는 고통에 찬 얼굴을 한 채 입을 다물었고 듣고 있던 공주는 그 너무나도 엄청난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거짓말도 잘하고 남을 속여먹는 데 능수능란한 사람이로군요』 공주가 이렇게 말하자 마루프는 고통의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공주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렇게 사기를 쳐 남의 재산을 손에 넣었으면 왜 그걸 가지고 도망가지 않았지요? 왜 그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줘 버리기만 했지요』 『그건 말이오, 그건 내 어릴 때부터 소원이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움큼씩 금화를 나누어주는 것이었답니다. 나 자신은 한푼도 갖지 않아도 좋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껏 나누어줄 수만 있다면 달리 소원이 없겠다고 알라께 기도하곤 했거든요』 듣고 있던 공주는 다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소원성취를 한 셈이로군요. 소원성취를 한건 좋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도 있듯이, 언젠가는 꼬리가 잡혀 더없이 비참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데 왜 당신은 도망가지 않았지요?』 그러자 마루프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망을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꼬리가 잡혀 최후의 날을 맞이할지언정 저로서는 알라께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후회도 하지 않고 당신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는다는 말이로군요』 공주가 이렇게 다그쳐 묻자 마루프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후회하는 것은 다만 한가지, 당신처럼 착하고 순진한 여자한테까지 거짓말을 하고 결혼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답니다. 당신을 보는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당신처럼 깨끗한 여자를 더럽힌 죄를 알라께서도 용서하지는 않으시리라는 걸 저는 이미 각오하고 있답니다. 오! 전능하신 알라시여! 부디 우리의 공주님을 지켜주시고 그녀에게 허물이 있다면 덮어주시고, 그녀의 시름을 씻어주소서!』 듣고 있던 공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물욕에 눈이 어두워 당신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갔고, 끝내는 그 사기꾼에게 딸까지 팔아넘긴 거지요. 그러니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이 더 죄가 클 수도 있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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