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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수필]최영미/친정어머니의 추어탕

입력 | 1997-09-20 07:10:00


『딩동 딩동』 청소를 하다말고 연 현관문 앞에 친정어머니가 두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서 계셨다. 『엄마 이게 다 뭐예요』 『강서방 추어탕 끓여 줄라꼬 준비 안해왔나』 하나 둘 펼치는 어머니의 보따리 앞에서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보따리 속에는 추어탕에 들어가는 기본야채는 물론이고 먹을 때 넣는 양념까지 하나 빠짐없이 빼곡이 들어 있었다. 『여기서 사가지고 해도 될텐데 힘드시게 뭘 이렇게 다 챙겨 오셨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미꾸라지는 뭐라 캐도 자연산이라야 되는기다. 맛이나 영양이나 양식한거 하고는 비교가 안되제. 그라고 야채도 없는거는 샀지만 텃밭에 내가 심은 것들 안따왔나. 이것도 니가 돈주고 살라 캐바라 제법이데이』 남편이 추어탕을 좋아하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하는 나를 옆으로 밀치며 어머니는 빠르게 움직이셨다. 『거섶이고 파고 데쳐서 물에 담가 놨다가 해야 잡내가 없데이. 음식은 머라캐도 정성으로 해야 맛이 안 있나』 어머니의 빠른 움직임을 미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그만 하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솥뚜껑을 닫은 어머니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더니 절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부처님요. 지가 마 오늘 큰 죄 짓심더. 한분만 용서해주이소. 방생을 해야 할 불자가 자식 멕일려고 마 이래 죄를 짓심더. 용서해주이소. 미꾸라지야 너거한테도 미안하데이』 어머니는 이런 분이다. 정작 당신은 추어탕을 입에도 못 대신다. 간을 맞추기 위해 국물을 조금 맛보는 것조차 꺼리는 분인데 사위가 좋아한다니 께름칙한 기분은 다 던져버리고 마음을 내신 것이다. 그날 저녁 남편은 추어탕을 큰 대접으로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어머니는 사위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시고 나 또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젠 추석도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어머니께서 절과 함께 하시던 기도가 떠올라 혼자서 슬며시 웃곤 한다. 최영미(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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