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님이 벌에 쏘였다. 잡목을 베다가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팔과 다리 어깨를 어찌나 쏘아댔는지 피부가 온통 우툴두툴하고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러잖아도 낫질이 손에 설고 날씨마저 덥다보니 벌초하는 모습을 뵙기가 송구스러운데 벌에까지 쏘인 것이다. 남편은 또 어떤가. 잔디깎는 기계를 다룰 줄 몰라 진땀을 뺀다. 옆에서 동네 어르신이 가르쳐줘도 쉽지 않았나 보다. 깎아야 할 잔디 대신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등에 멘 기계에서 휘발유가 새어나와 바지가 휘발유 범벅이었다. 수건으로 닦고 샘물로 씻었지만 헛수고였다. 냄새는 고사하고 살갗이 화끈거려오더라고 했다. 매년 이맘때면 조상어른들 산소에 가 벌초를 하는데 올해도 몇몇 바쁜 친척 말고는 모두 참석했다. 작은어머님 세분이 골고루 음식을 장만해 오셨다. 둘째어머님은 돼지고기를 사오셨고 셋째집과 넷째집에서는 열무김치와 과일 도토리묵에 호박죽까지 쑤어 오셨다. 맏며느리인 나는 찌개와 쌈장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야채전과 나물무침으로 진수성찬이었다. 노랗게 익은 햇호박으로 쒔다는 죽은 짙푸른 산과 어우러져 맛이 더 좋았다. 직접 가루를 내어 만든 도토리묵도 야들야들하기가 아기볼같아 입에 넣기가 무섭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특별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준비가 충실하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벌초는 저녁 7시가 돼서야 그런대로 끝났다. 증조할아버님 할아버님 아버님 산소까지 서투른 솜씨지만 훤해진 모습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웃어른부터 차례로 술과 포를 놓고 절을 올렸다. 포와 술 준비를 미처 생각못한 나와 달리 작은어머님께서 가져오신게 아닌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비록 벌에 쏘이고 휘발유 세례를 받아 괴로움은 있었지만 일년에 단 한번 있는 벌초를 계기로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만나 정을 나눌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둠이 깔리는 산길을 내려오는데 작은어머님이 『내년에도 고기는 내가 준비하마』 하시는 것이다. 몸이 풍선처럼 떠오르고 발걸음은 마냥 가볍기만 했다. 송은자(서울 강남구 신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