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1일로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87년 그가 취임했을 때 30년대 대공황이후 처음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던 미국경제는 현재 호황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7년째 연속 고성장과 25년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의 징후는 찾아볼 수 없는 「세마리 토끼」를 한손에 거머쥔 판국이다. 10년만에 미국 경제를 완전 탈바꿈시킨 주역인 그린스펀을 이제 미국인들은 왕도 아닌 황제라고 부른다. 인터넷에서는 그린스펀 숭배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미국경제를 소생시킨 그의 비결은 알고 보면 간단한 원칙을 지킨 데 있다. 바로 정치권이나 기업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달러화의 통화가치를 안정시킨 것이다. 방법은 높은 이자율을 고수하면서 통화량이 너무 풀렸다고 판단할 때마다 틈틈이 이자율을 인상하는 단 한 가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0년 걸프전 이후 국제원유가격의 상승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단기이자율을 인하하라는 압력을 가했지만 그린스펀은 경기침체국면이 장기화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때문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 출발한 오랜 공화당원인 그린스펀을 민주당소속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과 재선을 성사시킨 일등공신으로 꼽는 「역설적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시 대통령 시절 시련을 겪으면서 체질이 강건해진 미국 경제는 클린턴 취임이후 꽃피기 시작, 오늘의 호황세로 이어졌다. 그린스펀은 이제는 이자율에 손대지 않고도 경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연말 미 금융시장이 비이성적인 호황국면을 맞고 있다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전세계 주식시장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선 적도 있다. 그는 지난 6월 20세 연하의 NBC방송기자인 앤드리어 미첼과 결혼, 71세에 신혼의 단꿈을 즐기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