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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노트]김순덕/『「독한여자」에게 박수를』

입력 | 1997-06-25 20:21:00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남자를 네 부류로 나누는 것이 유행이었다. 키도 작은 남자부터 키만 작은 남자, 키만 큰 남자, 키도 큰 남자까지. 반면 여자에 대한 분류는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 두가지였다. 예쁜 여자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분류법이 나왔다.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다. 후자의 뉘앙스와 속뜻까지 감안해 세 글자로 줄이면 「독한 ×」. 가장 대표적인 「독한 ×」은 단연 TV드라마 「신데렐라」의 황신혜일 것이다. 남자와 포옹을 하면서도 요리조리 굴리며 「계산」하는 눈동자를 보면 하이고, 어쩌면 저렇게 여우같을까 싶다. 이상한 것은 그 여우짓이 밉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투자를 위해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일이 없는 여자를 미워할 수 있을까. 물론 끝모를 욕망에 부대끼며 사람의 감정까지 희롱하는 것처럼 무섭고 슬픈 일은 없지만…. 이 드라마가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급증한 90년대 한국사회에서, 사랑에 목매달기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뛰는 새로운 여성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70년대 고도성장시절, 출세를 위해 가난한 애인을 버리는 남자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주름잡았던 것에 비하면 20여년 만의 성역할 역전인 셈이다. 「독한 ×」 황신혜의 한계는 그가 TV속의 인물이라는데 있다. TV가 현실에서 쉽지 않은 권선징악을 입증해야 하는 한, 그리고 감히 여자가 남자를 가지고 노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시민들이 시퍼렇게 존재하는 한, 황신혜의 유리구두는 박살나게 돼있다. 그러면서 방송사는 「사람은 성실하게 노력해야 성공하는 법」이라고 공자말씀을 해댈 것이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현실속에서 일하는 많은 여자들이, 미모도 없고 주위에 재벌2세도 없지만 설령 있어도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독해야만 살아남는다』며 이를 악물고 있음(왜? 독기를 내비치면 정맞으니까)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일 때문에 혼기를 놓치고, 갓난아기를 떼어놓고, 「못된 며느리」 소리를 들으면서도 남이 주는 유리구두 대신 자신의 고무신을 신고 뛰는 그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 김순덕(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