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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어느 교사의 寸志장부

입력 | 1997-06-20 19:50:00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여교사의 집에서 발견된 촌지(寸志)장부는 우리 사회 전체에 충격과 절망을 안긴다. 사명감과 헌신에 투철해야 할 교사가 학부모에게 받은 촌지내용을 장부에 꼼꼼히 적어 놓았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도시 일부 지역의 극성 학부모들 사이에서나 문제되는 것으로 여겼던 학교 촌지 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자식을 학교에 맡긴 부모의 입장에서 늘 부담으로 느끼는 것이 학교로 담임교사를 찾아가는 일이다. 부모로서 교사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교사에 대한 「무관심」이 자녀에게 불이익을 가져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촌지장부가 어떤 목적에서 작성됐는지는 몰라도 이런 정도라면 학부모들의 우려를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사실 이번 촌지장부는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스승에게 고마움의 표시로서 작은 선물조차 못한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촌지 관행이 학교내에 횡행하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수업에 영향을 준다면 더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수억원의 뇌물이 오가는 공직자들의 비리에 비해 액수는 미미할지라도 교사들이 받는 촌지의 폐해는 그 이상이다. 부모가 학교를 자주 찾는 학생에 대해서만 교사들이 신경을 쓴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검찰은 교사들의 촌지 문제에 대한 수사를 언명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방향은 아니다. 수십만명의 교사들을 상대로 누구부터 어떻게 수사를 하겠는가.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교사들 사이에 촌지수수 거부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쪽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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