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하룻새 얼마나 모습을 바꿨을까. 요트를 집어 삼킬듯 달려들던 거센 비바람과 바람 한점없는 고요…. 대륙의 문물을 전했고 일제 강점기엔 부산과 시모노세키간 한맺힌 연락선이 오갔던 그 바다 대한해협을 건넜다. 23시간반의 항해에서 바다는 먼저 인내를 가르쳤다. 전장 45피트의 「선샤인」은 자동항법장치(GPS)와 VHF통신설비를 갖춘 크루저급 요트. 출발 20분전. 엔진이 꺼지고 메인세일(주범)과 지브(보조돛)가 펼쳐졌다. 이제 하카타까지는 바람에 의존할 뿐. 바람은 초속 7m의 남서풍. 눌러 쓴 모자가 바람에 날리고 45도쯤 기울어진 요트의 중심을 잡기위해 반대편에 다리를 내밀고 앉았다. 파도에 청바지가 젖어든다. 두시간쯤 흘렀을까. 요의를 참을 수 없어 비틀거리며 선실로 내려갔다. 그곳은 놀이동산의 「돌아가는 찻잔」. 화장실 문을 가까스로 열긴 했지만 도무지 지퍼를 내릴 수가 없다. 문 기둥을 잡고 일을 끝내는데 10여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사이 멀미에 녹다운돼 다시 정신을 차리는데 세시간이 걸렸다. 오후 4시반. 태양빛을 머금은 바다는 추수를 앞둔 황금빛 평야. 멀리 대마도의 산자락이 눈에 잡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곳은 「무풍지대」, 바다는 거대한 호수처럼 움직임이 없다. 스핀에이커(삼각돛)를 폈다 접었다하기 몇차례. 요트는 꼼짝할 생각도 않는다. 몇몇은 자포자기 상태로 갑판위에 눕는다. 대자연앞에서 다시한번 인간의 무력함을 실감했다. 해는 떨어지고 마스트(돛대)에 불이 켜졌다. 대마도를 벗어난 것은 다섯시간이 흐른 밤 10시반. 밤바다는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으로 대낮같다. 한꺼번에 끓여 퍼진 라면이 제맛이다. 물을 아끼기 위해 그릇은 휴지로 닦고 들통은 줄에 매달아 바닷물에 씻었다. 자정을 넘기면서는 졸음과의 싸움. 요트에서 떨어져도 배와 멀어지지 않도록 몸에 하니스(배와 크루들을 묶은 줄)를 채웠다. 네시간여의 곡예와 같은 항해. 배는 파도를 향해 쓰러질 듯 기울어지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세일만 젖지않으면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흔들렸다.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오징어잡이배들이 하나둘 돌아갈 즈음. 하카타항까지 두시간이면 닿겠다는 내비게이터(항해사)의 목소리가 반갑다. 그러나 하카타항 입구에서 다시 무풍.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다시 세시간을 기다렸다. 결국 「선샤인」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에야 골인했다. 뱃사람들은 바다를 산에 비유한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들었던 긴 고동소리와 정상을 밟았을 때의 느낌이 비슷해서 일까. 결승선을 지난뒤에도 고동 소리는 여운으로 가슴속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