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시간동안 눈을 못붙였습니다.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지난달 12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삼천리골 입구 다리 위. 헬맷을 안쓴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스티커를 발부하던 은평경찰서 구파발파출소 한 경찰관의 어깨 위에는 피곤과 졸음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전날 오전 9시부터 29시간째 연속근무로 빨갛게 충혈된 눈은 밀려오는 졸음을 못이기겠다는 듯 초점을 잃었다. 아직도 4시간이나 더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다. 은평경찰서 관할 파출소 경관들은 「로보캅」이다. 그들에게 비번이란 말은 낯설다. 관내에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생기면 24시간 근무 후 비번일인 다음날에도 오후 6시까지 사고지점에서 교통단속을 해야 한다는 서장의 「노(NO)비번」지시 때문이다. 이들이 비번을 빼앗긴 것은 진관내동에서 오토바이사고로 2명의 남녀가 숨진 3월24일부터. 이후 구파발파출소 경관들은 비번일에도 오후 6시까지 관내 네곳의 취약지점에 배치돼 교통단속을 해야 하는 「33시간 연속근무」를 하고 있다. 구산파출소는 이미 지난 3월 중순경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무단횡단하던 70대 할머니가 자동차에 치여 숨지자 「비번자들은 퇴근하지 말고 오후 5시까지 32시간 근무후 서장의 특별교육에 참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주일간 계속되는 특별교육에 경관들은 파김치가 되었다. 공포의 「NO비번」지시는 20일만인 지난달 14일 철회됐지만 경관들은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또다시 비번은 없다』는 상부의 경고 때문이다. 지난달 말 특별교육을 받았던 한 순경은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란다. 교통사고 신고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어차피 힘든줄 알고 선택한 직업, 우리야 괜찮아요. 하지만 경찰인 가장을 둔 죄로 남편과 애비 얼굴 한번 제대로 못보는 가족들에게는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