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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New]여탕, 놀며 쉬며『사교의 場』탈바꿈

입력 | 1997-03-17 08:25:00


[이성주 기자] 경기 고양시 화정동의 주부 한수진씨(30)는 매주 한번꼴로 승용차를 몰고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Y목욕탕에 간다. 이곳에는 1층에 탈의실 미용실 지압실 수면실 등이 있고 내부 계단으로 연결된 2층에 한약사우나 소금사우나 폭포수마사지탕 등이 있다. 이 빌딩의 3,4층은 남탕이고 각 층은 1백여평 규모. 한씨는 널찍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좋아서 집 부근의 목욕탕 대신 이곳을 찾는다. 그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갈 때도 있고 지난 1월에는 계모임의 뒤풀이를 했다』고 말했다. 친구나 이웃과 함께 깔끔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목욕탕을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욕조와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생활정보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매달 특정일에 만나서 20∼30분간 목욕한 다음 스낵코너나 탈의실 소파로 자리를 옮겨 가운차림으로 몇 시간씩 잡담을 나누는 이도 있다. 대중목욕탕이 남성 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쉬는 곳」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남성들이 전날밤의 숙취나 야근 피로를 풀기위해 직장 부근의 목욕탕을 찾아가 쉬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여성들은 여유시간이 늘면서 잡담을 나누거나 미용 다이어트 등을 하기위해 가는 것이다. 목욕탕에 어린 딸을 데리고 와 씻어주거나 한 자리에 눌러앉아 열심히 때를 미는 모습은 점점 옛 풍경이 돼가고 있다. 목욕탕들은 주부들을 끌기 위해 시설투자와 서비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 새로 생긴 1백여개의 목욕탕 대부분이 1백평 이상의 여탕을 갖췄다. 남탕만 크게 짓고 여탕은 작게 짓는 3,4년전의 대형목욕탕과 딴판인 것. 대형여탕은 서울 강남지역과 천호동 상계동 등 주변에 아파트촌이 있고 교통이 좋은 곳에 주로 들어서고 있다. 대형목욕탕의 여탕에서는 비누와 수건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수면실 스낵코너 미용실 헬스장 등의 편의시설과 주차장을 갖춘 곳도 많다. 3,4년전에는 「여탕에서 비누와 수건을 주면 몽땅 집에 들고 갈 것」 「수면실이 있으면 주부들이 살림 안하고 잔다고 남편에게 핀잔맞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었으나 옛말이 됐다. 사우나독도 이슬사우나 온천사우나 육각자화수사우나 등 희한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대중목욕탕이 규모나 시설, 분위기 등에서 특급호텔 사우나와 구분이 가지 않게 된 것이다. 일부 주부들은 호텔 사우나로 놀러 가기도 한다. 잠실의 호텔롯데월드는 투숙객이나 회원용이었던 여성사우나를 지난해 일반인에게 개방했는데 경기 성남 하남시 등에서까지 주부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김희찬국장(52)은 여탕의 모습이 급변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집안의 욕실에서 몸을 씻는 것이 일상화하면서 대중목욕탕은 미용과 만남, 휴식 등의 기능이 강조됐다는 것이다. 둘째, 「찜질방 문화」가 목욕탕문화를 바꾸는데 일조했다. 찜질방은 95년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가 대형화 고급화된 대중목욕탕과의 경쟁에서 지면서 작년부터 사라지고 있으나 「끼리끼리 발가벗고 노는 문화」를 확산시켰다. 목욕탕이 현금회전율이 높다는 점때문에 너나 할 것없이 목욕업에 뛰어들면서 대형화 고급화가 이뤄진 것도 여탕의 변화를 부채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