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12〉 『비밀 번호?』 『일테면 이런 거요. 오늘 당장 나는 컴퓨터 통신의 키워드도 1004번으로 바꿀 거고, 통장 비밀 번호도, 컴퓨터 문서 비밀 번호도 1004번으로 바꿀 거고요. 이 다음 앞으로 우리가 우리집을 갖게 된다면 우리집 현관의 키워드도 1004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비밀 번호도 아니네. 이미 내가 알아버렸으니까』 『그래야 운하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잖아요』 그 말이 그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을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기도 모르게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 속에서도 지금은 그녀 마음 속의 기쁨만 가득했다. 이렇게 함께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댈 수 있는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심으로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이미 낮의 일 같은 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의 고장난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그녀는 잊고 있었다. 숲 속으로 난 오솔길 같은 산책로를 걸어 정문 쪽으로 나오다 그곳의 환한 불빛들과 마주치자 마치 그곳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세상이 기다렸다는 듯 버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잠깐만요』 그녀는 잠시 그를 붙잡았다. 『왜?』 『저 문을 나서기 전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무슨 말?』 『우리는 아직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아요. 아주 막연하게 서로를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요.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까도 그랬고요』 어깨 위로 노을이 밀려들 때, 숲길에서 한 입맞춤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다시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이제 서로 조금씩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얼마큼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우리 마음 속의 비밀 번호들 다요』 그녀는 그것을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살아온 날들과, 그런 날들에 뿌리를 내린 저마다 다른 생각들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