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수(EQ)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EQ를 높이는 일의 중요함을 알고 있는 셈이다. 단지 대학입시에 묶여 지능지수(IQ) 높이는 일에 온 정력을 기울이느라 인성교육이 아예 뒷전으로 밀렸고 이로 인해 EQ가 낮아진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약삭빠른 상인들은 EQ를 속셈능력이나 IQ 기르듯이 프로그램화하고 학부모를 유혹하고 있다. EQ는 IQ를 높일 때 쓰던 방법으로는 기를 수 없다. 학교 성적은 시험보기 학습지하기, 각종 학원에서 과목과외하기 등을 통해서 높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EQ만큼은 이런 방법으로 절대로 높아지지 않는다. EQ는 부모 자신의 사랑 인내 시간을 투자해야 길러진다. 어른들이 아기와 어떤 인간관계를 맺는가는 아기의 뇌, 그중에서도 편도복합체에 기록되는 정서적 경험을 달라지게 한다. 어른과 아기가 생활하며 나누는 삶의 질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휑하니 목욕탕 문을 향해 가는 엄마를 뒤쫓아가며 세살난 남자아이가 엉엉 울었다. 이 때 엄마는 큰소리로 『네 잠바 가져와. 가져올 거야? 아니야?』하며 마구 때렸다. 아이는 『싫어 싫어』하며 엄마의 코트깃을 잡아당겼다. 엄마는 더 세게 때리면서 『빨리 가져와』하였다. 매를 피해 아이는 더 크게 울며 잠바를 가지러 가면서도 고개는 계속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엄마가 자기를 두고 갈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 사례를 보면 엄마가 분명히 아이의 고집을 꺾고 이긴 것 같이 보이지만 아이의 편도복합체에는 「화날 때는 무조건 때리는 거야」라든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할 필요는 없구나」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새겨지게 될 것이다. 이 엄마는 아이의 편도복합체에 부정적인 정서적 경험을 자기도 모르게 심은 것이다. 이 원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