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鄭東祐 특파원」 홍콩의 밤거리는 예로부터 노래가사에 표현될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 야경의 절정은 바로 12월에서 1월로 이어지는 연말연시에 이뤄진다. 빅토리아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홍콩섬과 구룡반도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빌딩들이 일제히 치장을 하기 때문이다. 대형 빌딩을 오색 전구가 빙둘러 수놓은듯 밝히는가 하면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나 복주머니가 아로새겨진다. 그러나 올 연말 연시에 이 데코레이션을 보는 홍콩인들의 마음은 예전같지 않다. 지난달 31일 홍콩섬과 구룡을 오가는 스타페리호 갑판에서 만난 홍콩인 찰리 청(29·무역회사 판매담당)은 『빅토리아만의 바다에 반사되는 야경은 그대로지만 우리 마음속의 홍콩은 이미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는 말로 이곳 사람들의 착잡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홍콩은 이제 어제의 홍콩이 아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홍콩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새로운 홍콩을 이곳 사람들이 일치된 기대감으로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기대, 두려움과 낙관이 뒤섞인 묘한 기분으로 맞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백55년간 이곳을 통치해 온 영국이 오는 6월말이면 물러가고 사회주의 중국이 새 주인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7월1일부터 영국령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로 새로 탄생할 홍콩은 이미 지난달 11일 董建華(동건화·60)를 초대 행정장관으로 선출해 놓았다. 그는 금년 초 홍콩특구 정부의 각 사(司·장관) 등 고위직 공무원을 임명하고 행정의회 의원들도 위촉해 정권 인수팀을 조기에 가동한다. 이에 따라 현재의 크리스 패튼 영국총독은 유명무실한 통치자로 전락하고 금년 상반기에는 이미 동건화가 사실상의 통치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주권반환식은 6월30일 밤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세계 각국의 대통령 등 내외빈 4천3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지며 이날 밤 자정을 기해 영국기 「유니언 잭」과 홍콩정청기가 내려진다. 대신 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국 오성홍기 및 홍콩특구기가 게양됨으로써 공식적인 주권 이양이 이루어진다. 홍콩특구는 중국과는 체제를 완전히 달리하는 문자 그대로 「특별한」 행정구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독자적인 입법 사법 행정기구를 갖고 독립 화폐도 갖는다. 그러나 홍콩인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중국의 「1국2체제」 약속이 내우외환 등 중국 자체의 사정으로 지켜질 수 없을 때 홍콩의 장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홍콩은 외형적으로 볼 때 변함없이 활기차다. 경제통계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 부동산업계 통계에 따르면 96년 한햇동안 중소형아파트 가격은 25%, 대형아파트나 호화주택은 30%나 뛰었다. 96년12월의 주가도 전년 말에 비해 23%나 올랐다. 이는 홍콩인들이 홍콩의 미래를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낙관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홍콩의 주권반환은 21세기에 아시아 전체의 정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아시아지역에서 영국 등 유럽세력의 퇴장과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의미한다. 중국은 홍콩의 접수를 계기로 홍콩 마카오 대만을 포함한 대중화(大中華)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등에 대해 맹주역할을 노릴 것이다. 중국은 또 홍콩을 아시아지역 전체의 대표무역항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홍콩은 현재까지 중국과 서방세계의 경제적 연결고리로 성장해 왔으나 앞으로는 지역적 제약을 탈피, 인근 광동 및 마카오지역까지를 포함한 광역무역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경쟁도시인 싱가포르 등을 따돌리고 아시아 최대의 금융 무역 도시로 부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함께 가장 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공직 기강이 매서운 도시임을 자랑하던 홍콩이 이미 분위기가 많이 흐려졌다는 지적들이 많다. 홍콩정청의 공무원반부패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동안 적발된 민원부서 공무원의 부패 건수는 전년 동기간에 비해 약 10%나 늘어났다. 급격히 늘어나는 본토인 밀입국자도 또다른 사회문제다. 매년 3만명 안팎의 밀입국자들이 검거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10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월경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게 관계당국의 추산. 홍콩의 새시대가 어떠한 모습으로 구체화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것은 새홍콩의모습이 단지 홍콩인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전세계의 주시 대상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편입된 경우는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