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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낡은 집도 아름답다

입력 | 1996-11-29 10:46:00


조선조 어느 시인이 남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조가비들이 엎드려 있는 것 같다」고 묘사한 바 있다. 사방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어우러진 장안의 스카이라인은 고즈넉하고 안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삭막하다. 획일적인 고층아파트가 분지와 계곡을 따라 도열해 있고 재개발 아파트들이 산허리를 기어 오른다. 강변에는 하얀 아파트의 병풍이 둘러쳐져 있다. ▼江南 「짓고 부수기」 바람▼ 지금 강남과 서울 주변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빽빽한 아파트 숲이다. 모양도 획일적이고 높이도 어슷비슷하다. 70년경부터 만든 지역이니 20여년 사이의 변화다. 아마도 이렇게 짧은 시간내에 인구 5백만명의 시가지가 조성된 예가 인류 역사상 또 있을까. 졸속이라면 졸속이었다. 그런데 고작 20년이 지난 아파트를 허물어 다시 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짓고 부수는 일에 영일이 없다. 쉽게 짓고 쉽게 부순다. 낡고 손때묻은 것에 대한 애정이 없다. 한쪽에선 열심히 집을 짓고 있지만 동시에 부수는 집도 많다. 연간 50여만가구가 지어지고 10만가구 가까운 집이 없어진다. 우리의 주택부족률은 아직도 높은데 왜 이리 자원의 낭비가 많은가. 20년이면 낡은 집이 아니다. 런던에는 지금도 빅토리아시대에 지어 1백여년이 지난 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래된 집일수록 값이 더 나간다. 나는 영국인 친구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서로 자기 집이 더 오래된 집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오래된 집일수록 견고하고 아름답다. 낡은 것들은 닦고 고쳐서 쓴다. 그래서 도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