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트코인 오르는 거 보면 아무리 좋은 예·적금이라도 비교가 안 돼요. 아버지, 친구들 모두 코인으로 돈 버는 거 보니까 뒤늦게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청년희망적금 만기를 맞은 이모 씨(27)는 1310만 원의 목돈이 생겼다. 이 씨는 5년간 매월 70만 원씩 넣으면 5000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청년도약계좌 연계 신청 대신 비트코인 투자를 택했다. 그는 “이달 초 1310만 원 중 400만 원으로 비트코인을 샀는데 벌써 100만 원 정도 수익을 봤다”며 “가격이 조금 내리면 남은 돈으로 더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 주가는 디스카운트, 코인은 프리미엄
11일 국내 원화마켓에서 비트코인이 최초로 1억 원을 넘어서면서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가상자산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하루 거래대금은 15일 낮 12시 기준 15조985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코스피 거래액(12조9180억 원)보다 많고, 전날(12조2380억 원)보다는 3조 원 넘게 늘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돌파한 11일 이후 닷새간 무려 70조 원이 넘는 가상자산 거래가 일어났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상자산 투기 심리에 유독 한국에서만 가상자산 시세가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도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분석 업체 웨이브릿지에 따르면 국내와 해외 주요 거래소 간 가상자산 가격 차이를 지수화한 김치 프리미엄은 15일 9.23%였다. 국내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에서 살 때보다 10% 가까이 비싸다는 의미다. 김치 프리미엄은 비트코인 가격이 5000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1월 2∼3%에 머물다가 비트코인이 8000만 원을 넘자 5%대로 상승했다. 1억 원을 돌파한 이후 13일에는 8%대를 뚫었다. 김치 프리미엄이 9%를 넘어선 것은 2021년 5월 30일 이후 처음이다.
코인 투자 열풍과는 정반대로 국내 증시는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주가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15일에도 코스피는 전날보다 1.91% 급락하며 지수가 연초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올 들어 크게 오르는 와중에도 유독 국내 증시는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장기화되는 것이다.
● 시중 자금 빨아들이는 코인 시장
자본 시장의 대기성 자금도 가상자산 시장에 뭉칫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최근 청년희망적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5대 시중은행에서 적금이 13조 원이 빠져나갔다. 이 돈은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으로 대거 이동한 상황이라 언제든 가상자산 시장에 몰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유통 물량은 한정적인데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가상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관투자가 등의 코인 거래가 엄격히 규제돼 있는 상황도 심한 가격 급등락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관 등의 코인 거래가 통제되다 보니 투기가 과열돼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조정되는 과정이 생기기 어렵다”고 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 투자자들의 수요만이 들끓는 고립된 투기판이 된 셈이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가상자산은 글로벌한 자산이라 이동이 많은 편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자금 흐름이 막혀 있다 보니 김치 프리미엄도 생기는 것”이라며 “자금 흐름 통제를 보다 여유 있게 풀어주면 가격 차이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