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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지불하는 값

Posted October. 19, 2022 08:51,   

Updated October. 19, 2022 08:51

日本語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 나에 대해 쓰진 않겠지.” 자신의 연인이 사적인 경험을 글로 쓰는 작가이기에 노파심에서 한 말이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가 바로 그 작가다.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에르노는 그 남자와의 일을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에 담아 펴냈다. 책 속의 남자는 그보다 십여 년 아래의 유부남인 러시아 외교관으로 허구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그 남자를 사랑하면서 했던 생각과 행동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낯 뜨거운 묘사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으로 인한 고뇌와 상처, 이별을 치유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애도라고나 할까.

 문제는 그 애도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쓰지 말라고 했다는 상대방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쓰는 행위는 뭘까. 물론 작가는 그것이 그 사람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은밀한 얘기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미 그것은 그 사람에 “관한” 책이 되었다. 그 사람은 이용되고 그것은 다시 책이라는 상품이 되어 유통되고 소비되었다. 그 사람이 읽으라고 쓴 글도 아니고, 그 사람이 읽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신의와 윤리를 저버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에르노가 쓴 글들은 ‘세월’을 제외하면 다 그렇게 타자를 소비한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아니 무엇이든 소재로 삼는다. 부모의 말과 행동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서 윤리성은 어딘가로 실종된다. 이것이 그가 글을 쓰기 위해 지불하는 값이다. 그의 입장에서 글쓰기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그 나름의 방식일지 모른다. 과거의 경험을 스토리텔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드러나는 삶의 진실. 그의 글에서 자신의 경험에 상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는 독자들이 있는 것은 그래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