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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할머니 첫 증언 30주년, AI기술로 만나는 위안부 증언

김학순 할머니 첫 증언 30주년, AI기술로 만나는 위안부 증언

Posted August. 16, 2021 08:22,   

Updated August. 16, 202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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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총무 뭐 하는 거요. 일본이 이렇게 날뛰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요. 나를 당장 (기자회견으로) 불러내세요.”

 1991년 8월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에서 일하던 윤영애 씨(78·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인 1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고통 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일본은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고 우리 정부는 모르겠다고 하니 말이나 됩니까”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 김 할머니가 한국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알렸던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다.

 윤 씨는 14일 김 할머니의 증언 30주년을 맞아 14일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가 개최한 ‘내가 기억하는 김학순’ 토크콘서트에서 김 할머니가 증언에 나서게 된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윤 씨는 1991년 4월 주한 일본대사관이 “(위안부 피해를) 인정할 수 없다. 증인이 나온다면 몰라도”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위안부 피해자를 수소문하던 중 그해 7월 김 할머니를 소개받았다.

 윤 씨는 자신을 찾아온 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흰 옷을 입고 온 할머니의 눈은 동화책에 나오는 사슴 ‘밤비’의 눈과 같이 두려움이 서려 있으면서도 초롱초롱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윤 씨에게 “증언 권고를 받고 많이 망설였지만 스스로에게 ‘왜 모진 고통을 당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가’라고 물으니 ‘내 아픔과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 후세의 다른 여성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17세에 강제로 끌려가 3개월 동안 피해를 당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마음이 후련하다. 나를 사용해서 이 일을 세상에 알리라”고 윤 씨에게 당부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 할머니는 기자회견에 나가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했다. 이를 계기로 정대협에 피해 할머니들의 신고가 물밀 듯 들어왔고 정부는 이 가운데 238명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TV에 어떤 할머니(김학순)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김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4명뿐이다. 여성가족부 등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피해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최근 선보였다. 여가부 산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와 서강대 ‘영원한 증언팀’은 6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강대와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영원한 증언’ 전시를 진행한다.

 이 전시는 이옥선(94) 이용수 할머니(93)의 증언이 녹화되어 있는 AI 프로그램에 시민들이 질문을 하면 그에 맞는 증언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기자가 영상 속 이옥선 할머니에게 “어떻게 위안부로 끌려가게 되셨나”라고 묻자 이 할머니는 팔을 움직이며 “식모살이 하던 시절 주인이 시킨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끌려갔다”고 답했다. 이용수 할머니 역시 AI 영상에서 “굴다리에 가니 군인이 날 밀면서 내려가자고 했다. 장난인 줄 알았다. 16세에 기차를 처음 타봤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주최 측은 11월까지 시범 전시를 한 뒤 오류 등을 수정해 세계 주요 국가에서 공식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AI로 만나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은 dongA.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