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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수마발( )

Posted December. 31, 2011 10:59,   

日本語

국문학자 양주동은 독서의 즐거움을 현란한 필치로 풀어낸 수필 면학의 서() 말미에 소화() 한 편을 덧붙였다. 한문만 배우던 소년시절, 영어를 독학()하다가 영문법의 삼인칭 단수란 말을 며칠 밤낮 읽어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눈길 30리를 걸어 찾아간 읍내 보통학교의 신임교원에게서 설명을 듣고 날아갈 듯 기뻐한다. 그가 적어온 메모는 이랬다.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수)이 다 삼인칭야()라.

우수마발의 사전적 의미는 소의 오줌(수)과 말의 똥()처럼 쓸모없고 하찮은 것이다. 한방()에서는 우수가 들에 나는 질경이, 마발이 썩은 나무에 자라는 버섯을 뜻한다. 그만큼 값싸고 흔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약재()를 일컫는다. 명의()는 개똥도 약에 쓰려니 없다며 허둥대지 않는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는 우수마발을 모두 거두어 저축해 놓고 쓰일 때를 기다리는 것이 의사()의 현명함이며, 잘난 자와 못난 자를 뒤섞어 관직에 나아가게 하고 능력에 맞게끔 활용하는 것이 재상()의 도리라고 했다.

사람으로 치면 우수마발은 주연급도, 조연급도 아닌 장삼이사()다. 하지만 이 익명()의 낱알들이 뭉쳐 세상을 바꾼다. 재스민 혁명으로 압제의 사막에 거센 민주화 모래폭풍을 일으켰고, 99%의 침묵을 깨고 자본주의 4.0의 불씨를 지폈다. 전방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국경을 넘나들며 민심과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2012년 양대 선거를 치르면서 대한민국의 지형()이 어떻게 깎이고 메워지는가도 장삼이사와 우수마발의 표심()에 달려 있다.

청와대는 2012년 신년 화두를 임사이구()로 정했다. 어려운 시기, 큰일을 맞아 신중하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수마발이다. 청와대의 2011년 화두는 일기가성(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냄), 2010년 화두는 일로영일(지금의 노고를 통해 안락을 누림)이었다. 이 땅의 우수마발은 늘 일로를 다했지만 일기가성하지 못한 정치 탓에 아직 영일하지 못하다. 위정자들이 우수마발을 두려워함으로써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

이 형 삼 논설위원 hans@donga.com